오늘 살펴볼 소설은 중국의 대표작가인 위화가 내놓은 소설 [허삼관매혈기]입니다. 허삼관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피를 팔아서 어려움을 돌파하는데요. 비록 가난했지만 언제나 올바른 신념과 인생관으로 정직한 삶의 양식을 갖추고자 했던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허삼관에게 피는 단순히 혈액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그에게 피는 곧 힘이자 돈이었거든요. 허삼관은 피를 팔면 35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가서 피를 팔고 그 돈으로 허옥란과 결혼합니다. 말 그대로 몸을 팔아서 결혼 밑천을 마련한 겁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허삼관은 그 이후로도 아홉 번이나 더 피를 팔게 됩니다. 모두 가족을 위해서였죠.
환갑이 된 허삼관이 생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아 매혈을 할 때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자 하지만 병원에서 는 늙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허삼관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울고 맙니다. 그때 그를 위로해 주는 인물이 바로 그의 아내 허옥란입니다. 40대 이상의 가장이라면 이 장면에서 허삼관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가장 크게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허삼관의 가족 사랑법은 이땅의 모든 아버지들과 닮았습니다. 가진 건 부족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은 서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생명마저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게 바로 아버지들입니다. 비극적이면서도 때로는 희극적인 허삼관의 가족 사랑법이 더 절절이 다가오는 건 아마도 이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허삼관매혈기>는 배우 하정우가 2014년 <허삼관>으로 만들어 개봉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어떤 점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면서 영화도 보는 걸 추천합니다.
<원청>의 린샹푸, <인생>의 푸구이, <제7일>의 양진바오 등 위화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자신만의 부성애를 보여주는 허삼관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위화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대표작 [인생, 1993]이 궁금하다면
망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위화의 작품 [제7일, 2013]이 궁금하다면
8년만에 돌아온 위화의 신작 [원청, 2022]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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