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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경영

현대 사회 기준으로 다시 보는 삼국지 인재상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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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지금도 현대인의 필독서로 불린다. 읽어두면 인생살이에 여러 가지로 시사할 바가 많은 덕분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지면서 삶의 롤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동안 상한가를 치던 유비는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가치가 많이 하락한 편이고, 간웅으로 평가되던 조조는 그 가치가 점점 높게 평가되고 있다. 오늘은 삼국지 등장인물 중 촉나라의 주요 인물들을 현대 사회 기준으로 평가해 본다.

 

삼국지는 흥미진진한 인간상, 변함없는 욕망, 인간들의 전쟁 등이 얽혀 있어 축소판 인생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친구로는 좋지만 일을 도모하기엔 글쎄, 유비

 

촉의 황제 유비는 유교가 지배 윤리일 때에는 도덕군자로 평가받았다. 한나라 왕실의 피를 잇는데다 효자이고, 의리를 중시하며 도리를 알았으니 그럴만하다. 현대 사회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좀 달라진다. 친구로는 최고의 인물이지만 사업을 같이 하기엔 꺼려진다. 일을 같이 하려면 목표 실현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유비는 거창한 이상을 갖긴 했지만 실현 능력은 미흡한 탓이다. 무능한 파트너보다 더 위험한 사람은 목표만 거창하고 실현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은 부족해도 부문별로 탁월한 부하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이 리더에게 더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확실히 유비는 그러한 일을 잘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리더에겐 과감한 결단력과 솔선수범 자세가 필요하다. 헌데 유비는 우유부단한데다 감정적이기까지 했다.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서둘다가 이릉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다. 본인이 그동안 군사 작전으로 성과를 이룬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였다. 이 패전으로 유비도 죽고 촉의 운명도 기운다. 탁월한 부하들과 행운 덕분에 왕위에 오른 자의 한계였다. 유비야 자신의 실수로 망했으니 아쉬울 게 없지만 그때까지 헌신한 부하들은 얼마나 허탈한 상황인가. 이래서 리더를 잘 골라야 한다.


 

 

누군가의 말일 때 가장 효과적인 ‘만인지적’, 관우

 

관우는 조조, 곽가, 주유 등 당대의 유명 인물들이 입을 모아 ‘만인지적’이라고 할 정도로 용맹과 무력, 용병술까지 갖춘 장수였다. 적군 사기를 단숨에 꺾고 아군 사기를 올리기엔 이만한 장수가 없었다. 관우는 조조군 소속일 때 원소의 장수인 안량을 1:1로 해치움으로써 전투를 손쉽게 승리로 이끌었다. 누구보다도 강력한 무력을 보유했음에도 주군을 향한 변하지 않는 충성심으로 후대에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무력만 따지면 관우를 능가한 여포가 배신을 밥먹듯이 하다가 비참한 최우를 맞이한 것과 비교된다. 제 이익 챙기기에 바쁜 이 시대에 충절이 변치 않는 인물은 모든 회사에서 바라는 인재일 것이다.

관우도 약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갈공명을 영입할 때 그의 탁월함을 노골적으로 시기하기도 하고, 꼰대질을 했다. 평소에는 오만하다는 평가도 들었다. 1:1 대결이나 소규모 전투에는 탁월하지만 성을 걸고 싸우는 큰 전투에서는 지휘자로서 부족한 면을 보였다. 제갈공명과 같은 탁월한 군사 밑에서 전략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선봉장이나 돌격대장으로 적합해 보인다. 즉, 조직 내에서는 효과적이나 조직을 떠나면 오래 가지 못하는 조직형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 장비

 

장비도 무력에 있어서는 관우에게 뒤지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관우보다 더 적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장비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뚜렷했다. 용맹하고 무력도 강했지만 성질을 이기지 못해 늘 분란을 일으켰다. 장비가 일으킨 말썽 때문에 유비와 관우는 몇 번이나 도망길로 나서야 했다. 유비가 현령일 때에는 감찰 관리를 매질하는 바람에 도망자가 되어야 했고, 제갈량을 데리러 갔을 때는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조조를 떠나 돌아온 관우의 내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배신자라고 욕하며 싸우려 했다. 머리가 육체 능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례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현명한 사람이 없으면 남에게 이용당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전가하기 쉽다. 앞뒤 가리지 않고 폭발하는 급한 성격은 언젠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장비 같은 인물은 주변에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모든 기업 CEO들이 원할 다재다능한 인재, 제갈공명

 

삼국지연의의 표현을 그대로 믿자면 제갈공명은 ‘타고난 천재’다.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조차 그를 당대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표현했다. 제갈공명이 남긴 출사표는 지금까지도 명문으로 유명하다. 제갈공명이 보여준 신출귀몰한 작전과 적의 혼을 빼는 심리전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정도다. 제갈공명은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어도 불평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았다. 어떻게 적을 물리칠 수 있을지만을 생각했다.

그의 비범한 두뇌가 만든 결과는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거문고를 치는 모습만으로도 사마중달의 15만 대군을 물리쳤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난 후, 좌상을 만들어 사마중달을 도망가게 만든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의 고사를 보라. 적벽대전 시 안개를 이용해서 조조군의 화살을 모아 아군의 화살로 쓴 전략이나 화공을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서 동남풍을 불게 한 일(제갈공명은 당시 그 시기의 일기를 정확히 알고 쇼를 했다), 맹획의 칠종칠금은 또 어떤가.

소설인 삼국지연의와 실제 역사 기록인 정사 삼국지에 나타난 제갈공명의 모습은 좀 다르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제갈공명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발한 계책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형 인물이라면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은 용병술과 보급, 행정 등의 기본 원칙을 잘 지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가 매우 탁월한 인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모든 면에서 약자였던 유비가 위와 오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던 건 제갈공명 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 사회에서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옆에 두고 사업을 해 보고 싶은 인물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공명 같은 인재는 기업을 설립해도 최소한 중견 기업 이상까지 무리 없이 키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천재적이던 공명도 정작 몸속에서 자란 병과의 싸움에서는 지고 말았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탁월해도 운을 이길 수 없다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명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불명예를 견뎌야 했던 사마 중달은 모든 것을 인내한 결과 공명 사후 비로소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걸 보면 ‘운칠기삼’이라는 옛말은 인생의 진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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