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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충만한 문제의식으로 관객의 자각과 자성을 촉구하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

by 마인드 오프너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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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매가 된 워쇼스키 형제의 마지막 흥행작이다.

장르 : 액션, 드라마, SF, 스릴러

제작국 : 미국, 독일

상영시간 : 132분

개봉 : 2006.03.16.

감독 : 제임스 맥티그

주연 :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등급 : 15세 관람가

 


 

워쇼스키 형제들이 각 잡고 만든 문제작

 

워쇼스키 형제들의 영화는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매트릭스>와 <브이 포 벤데타> 이후 흥행 성적이 부진한 탓에 할리우드에 더 이상 남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긴 하지만 말이 다. 설령 할리우드에서 밀려 사라진다 해도 그들의 발자취는 <매트릭스> 시리즈와 이번에 소개할 <브이 포 벤데타>만으로도 영화계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만큼 두 형제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하고 각성할 기회를 제공했다. 앨런 무어, 데이비드 로이드가 발간한 동명 그래픽 소설에 각색을 더해 만든 <브이 포 벤데타>는 포스터만 보면 <쾌걸 조로>와 유사한 액션물로 착각하기 쉽지만 정치 비평극에 가깝다.

 

V는 승리이자 복수이자 숫자 5를 의미한다.


통제받는 대중의 자각과 행동 촉구

 

정치극이라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중학생 정도의 지성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니까. 원작이 1990년대 영국을 무대로 설정한 것에 비해 영화는 3차대전이 끝난 2040년의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영국인을 통제하고 독재를 펼치고 있는 정치인들은 보는 이에 따라 나치즘이나 빅 브라더, 파시즘을 연상하게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든지 말하려는 결론은 하나다.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들의 자각과 자성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V는 움직이지 않는 대중들(도미노)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첫 도미노 조각이다.

 

대법관을 위시한 소수의 정치인들은 폭력에 의한 독재를 고집한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다

 

소수의 독재자와 기득권자들에 의해 뒤틀려 흐르던 역사가 원래 흘러야 할 물길을 찾을 수 있었던 계기는 침묵하고 인내하던 대중들의 봉기였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4.19의거, 5.18광주항쟁, 촛불집회 등 대중들의 각성에 이은 행동은 독재자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역사를 밝히는 횃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마음 속에 깊이 와 박히는 이유는 이렇게 잘 풀린 역사적인 경우보다 잘 풀리지 않고 흘러가는 일상의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우리 사회에서 내부자 고발을 한 당사자가 왕따를 당하거나, 갑질을 한 당사자보다, 학폭을 가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불이익을 더 받는 경우를 보라. 그러한 과정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대중은 침묵하고 외면한다. 끼어들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현실은 멀고 역사는 가까운 격이다. 이래서야 책이며 영화며 각성을 촉구하는 동기가 의미가 있을까 싶다.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침묵하는 대중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대중이 가장 큰 문제

 

극중에서 V는 방송국을 장악한 후 메시지를 송출하면서 “지금 현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국가의 탓이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TV를 보고 있는) 여러분이 방임했기 때문”이라며 지적한다. V의 이 지적은 극중 영국민들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향하고 있다. 그 지적이 일상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면서 적확한 것이기에 관객들 대다수는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적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뿐이다. 앞으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겠다”이거나 “그래도 방관하겠다”이거나.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라면 이 영화는 아는 이야기만 계속 되풀이하는 형편 없는 선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V가 현명했던 이유는 대중들을 결집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매스 미디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주인공의 선택

 

주인공 V는 도미노의 첫 번째 말이 되기 위해 기꺼이 피로 점철된 복수를 감행한다. 폭력과 통제로 일관하는 독재 정부에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V의 과감한 복수행은 현실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거니와 이 영화에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는, 시각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V는 복수행의 종점이 다가오자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웅물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대중이 주인이 되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비록 정당한 수단이었다 하더라도 복수를 위해 피로 얼룩진 과거를 가진 자신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택한다. V는 복수를 위해 Vendetta를 선택했지만 자신이 이 흐름을 끊지 않는 한 복수의 대물림이 계속될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원작소설과 다르다).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직 증오와 복수를 위해 살아온 그에게 삶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복수와 증오로 일관된 삶을 살던 V는 이비를 만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자신의 결말을 결정한다.


증오와 복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V

 

이 영화를 워쇼스키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 기획, 제작했더라면 V가 통쾌하게 대법관 일당을 모두 죽이고 홀연히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주 완벽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뻔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복수와 증오로만 세상을 보던 V가 사랑에 눈뜨게 한다. 사랑은 V로 하여금 더 잔혹하고 비정한 복수행을 할 수 있던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든다. 사랑은 V 이전에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과 이비의 부모가 이비에게 나누어주었던 가치이기도 하다. 엄혹한 세상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과 결심을 낳게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사랑이 확장되면 비폭력이 되고 비폭력은 폭력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동기가 된다. 결말에서 V 가면을 쓴 대중들이 총구를 겨눈 군대들과 싸우지 않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장면은 이러한 사랑의 확장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부당한 독재와 싸우고, 부당한 갑질에 저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잊지 말아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이비가 보여주는 승리의 환호는 V가 격리시설에서 보여준 것과 똑같다.


행동한 것과 침묵한 결과의 차이

 

독재와 민주는 한 끗 차이다. 이 차이를 만드는 주체는 동일하다. 대중이다. 이 차이를 유지하는 주체 또한 대중이다. 프랑스는 시민들이 각성하고 행동했기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시민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소련과 러시아, 중국은 스탈린과 마오쩌뚱이라는 독재자가 그토록 오래 군림했음에도, 수많은 피와 폭력을 양산했음에도 침묵을 선택했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국민들의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독재자를 피하지 못했다. 러시아 국민이나 중국 국민들이 현 체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침묵이 후손들에게 암울한 미래를 선사한다는 사실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독재에 의한 수많은 폭력과 죽음을 침묵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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