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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그들은 가족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준비되지 않은 전쟁터로 향했다, <라스트 프론티어>

by 마인드 오프너 2021.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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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전쟁

제작국 : 러시아

제작년도 : 2021.1.14

상영시간 : 142분

감독 : 바딤 스멜레프

등급 : 15세 관람가

 


러시아 영화라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기대 이상이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과 같은 맥락의 영화로 보면 된다.


만약 히틀러가 러시아를 먹었다면

 

역사엔 만약이란 없지만 궁금하긴 하다. 히틀러가 만약 소련 불가침 조약을 깨지 않고 유럽 정복에만 올인했다면 어땠을까. 유럽을 완벽하게 정복하고 나서 군비를 재정비한 후 소련을 침공했다면 충분히 소련도 정복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오늘날 세계는 게임 <울펜슈타인>의 설정처럼 제3제국의 통치 하에 있을 수도 있었다. 미국이 참전하기 전 유럽 전체와 싸워 우세를 점하던 당시 독일의 놀라운 국력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소련과 유럽에 동시다발적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대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는 나치의 패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게임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나치가 전 세계를 정복한 가상 역사를 무대로 하고 있다. 히틀러의 잘못된 선택만 아니었다면 가능했던 일이다.


모스크바까지 190km

 

<라스트 프론티어>는 히틀러의 세계 정복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시기가 배경이다.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이 모스크바에서 불과 190km 지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바람 앞의 촛불 형국이 된 소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일군의 모스크바 점령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고사하고 전선을 막는 병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독일군을 막을 병력은 전혀 없었다. 소련군 수뇌부는 고민 끝에 모스크바로 오는 길목인 일린스키를 사수하기 위해 포돌스크 보병/포병사관학교 생도들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전투 경험이 전무한 생도들을 전장에 투입한다는 결정은 소련군 수뇌부의 무능함을 보이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소련군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병생도사관학교에서 훈련받던 생도들은 갑작스런 수뇌부 명령으로 전장으로 달려간다. 


생도는 시간벌기용 소모품

 

훈련을 거듭하며 여유롭던 사관학교 분위기는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비상나팔 소리로 급변한다. 생도들은 불안감 반, 기대감 반의 심정으로 비상출동 준비를 마친다. 이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할 스트렐비스키 대령은 막막하기만 하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병력이 치러야 할 희생은 뻔한데다 대포를 비롯한 무기마저 절반 이상이 고장난 상태였다. 수뇌부 장성들은 지원을 약속하지만 대령은 그 약속이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명령이니 따르지만 대령은 생도들의 절대다수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대령의 착잡한 모습과 부대 정문에서 가족들과 재회의 약속을 굳게 하는 군인들의 작별 장면이 교차하기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더욱 짠하기만 하다.

 

포병부대 지휘관인 스트렐비스키 대령은 아무 것도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전선 저지만 명령하는 지휘관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독일 정규군 VS 소련 생도들

 

생도들은 소련군 예비군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적어도 6일 동안 독일군 부대를 저지해야 한다. 임무는 능력 이상인데 이들의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생도 수는 불과 3,500명이다. 그 중에 전투 경험이 있는 생도는 한 명도 없다.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는 부족하거나 고장난 상태다. 이 병력과 무기로 독일군을 막으라는 수뇌부의 무능함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소련군이니까 가능한 명령이다. 일린스키로 이동하는 도중 독일 전투기들의 습격을 받는 바람에 사상자가 발생하고 탄약트럭마저 잃는다. 도착해보니 구축한 진지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장갑판이 없어 포격 한 번이면 무너지는 상황이다.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군 폭격기 부대의 폭격으로 진지가 완전히 쑥밭이 된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땅을 파도 묻지 못한 시신이 있을 정도

다.

 

생도들은 대포를 방열해 놓고 다가오는 독일군 전차 부대를 직사한다. 


실감나는 교전 장면

 

이 영화의 전투 장면 대부분은 독일 전차부대와 소련 포병/보병 생도 부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보병부대들의 상륙작전이나 진지 점령, 특수부대의 강습 작전을 소재로 하는 대부분 전쟁 영화와는 다른 점이다. 전차와 달리 대포는 진지가 노출되면 끝장이다. 포탑을 움직이는 게 포를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스트렐비스키 대령은 진지가 노출되면 포를 빼냈다가 다시 넣는 기발한 작전을 지시한다. 포를 넣었다 빼며 전차에게 한 방을 노리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가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한다. 독일군 전투기의 강습, 폭격기의 진지 폭격, 독일군 스파이들의 활약에 대비하여 소련군 다련장포 공격, 포병부대의 직사, 독일군 지휘관 납치 등 다양한 장면들이 등장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첫번째 사격이 빗나가고 이쪽의 위치를 알아챈 독일군 전차가 포구를 돌리고 있다. 이쪽이 빠르냐 저쪽이 빠르냐의 차이가 생사를 결정짓는다.


사랑은 지옥에서도 핀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어떤 환경에서든 사랑이 피어난다. 애인 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모자 간의 사랑일 수도 있다. 간호부대 군의관은 전선에 투입되는 포병 부대 소속 아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끝내 눈물을 보인다. 오랜 군생활 경험으로 철없는 아들이 사지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 속도 모르고 아들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굳게 약속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간호사인 마샤와 마샤를 좋아하는 두 남자의 삼각관계는 안타까움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혹독한 전투 속에서도 이들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끌고 간 것은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다.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잔혹한 전투 상황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장미꽃과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그러나 전쟁의 여신은 이들의 사랑을 가차 없이 짓밟는다. 철수 명령이 내려진 후에도 마지막 남은 독일군 탱크를 잡기 위해 진지에 남은 라브로프와 그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다 운명을 같이 하는 마샤의 모습은 한없는 안타까움을 남긴다.

 

남녀 간 사랑은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활활 타오른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하는 이유

 

감독은 영화 곳곳에서 가족 사진과 사랑을 일구어 가려는 연인들의 모습을 비추어준다. 이들의 모습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아무리 두려워도, 가고 싶지 않아도, 군인들이 내심과 달리 가족들과 애인들을 안심시키고 전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결국 그들 때문이다. 행복했던 사진을 보며 공포를 이겨내고, 연인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염원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극소수 장본인들은 추잡한 개인의 탐욕을 달성하려 다수의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지만 정작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은 오로지 가족의 행복과 안위를 위하고자 할 뿐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아이러니인가.

 

전장으로 향하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는 아내이지만 남편은 아내와 아이의 안위를 위해 공포와 두려움을 떨치고 전투에 임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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