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문화

위대한 영화를 빛내준 위대한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7.
반응형

더 설명해 뭘하겠는가. 포스터의 문구가 이 영화의 가치와 역할을 극명하게 표현해 놓았다.

 

시각매체인 영화에서 무시되는 음악

 

영화는 철저히 시각에 의존하는 매체다.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시각에 전적으로 의존한 채 영화를 보는 건 관객들의 몰입을 쉽게 유도한다. 흥미로운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쯤은 순삭해버린다. 하지만 시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람 방식은 영화의 또다른 표현 방식인 음악을 무시하게 만든다. 정말로 독특하고 인상적인 OST(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귓가를 울린 덕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는 스타워즈 OST와 같은)가 아니라면 관객들은 해당 음악을 들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캄캄한 암흑.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류 문명 이전을 뜻하는 것일 게다.

 


영화가 난해하거나 지루하다면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영화에서 음악은 삭제 불가 요소다. 상상해보라. 분위기가 고조되고 악당과 주인공이 대면할 순간에 이르는데 배경음악 하나 없이 흘러가는 밋밋한 영상을 말이다. 눈은 화면을 보지만 뇌는 귀로 들어오는 음악의 비트 변화를 통해 다음 장면을 기대한다. 영화음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영화가 재미없거나 난해해서 관객들이 제대로 몰입하지 못할 때다. 시선이 화면을 떠나거나 방황하면 그때야 비로소 청각이 음악을 포착한다. 아, 물론 이때에도 OST가 죽여주게 뛰어나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귀속을 슬며시 파고든 음악은 기억 면에서 화면보다 훨씬 오래 잔상이 남는다.

 

어둠이 걷히고 음악이 흐르면서 태양과 지구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영화가 끝나도 환청이 들리는 음악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SF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관객들이 시각과 청각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작품이다. 1.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의 SF영화들과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서 급이 다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든 SF영화들이 오마주하고 싶은 작품이라고나 할까. 메시지와 표현 방식의 심오함 때문에 영화를 처음 보면 당황스럽다. 난해하기도 하다. 2. 도대체 뭘 본 건지 당황스러운 관객들의 기억 속에 아마도 유일하게 남아 있을 법한 요소는 오프닝을 웅장하게 장식했던 음악이다. 마치 화면을 위해 준비한 듯한 음악은 서두부터 관객들의 얼을 빼놓는다. 압도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제목이 나타나고 음악은 최고조에 달한다.


최고의 영화를 빛내 준 최고의 음악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온통 새카만 화면에서 한 가닥 빛이 드러난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잔잔한 배경음이 크레센도로 커져간다. 쿵쾅쿵쾅 울리는 드럼을 배경으로 유려하게 울려퍼지는 현악기의 선율이 점차 커지면서 금관악기가 빠방! 하고 터진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지구와 태양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다시 한 번 같은 파트가 더 큰 볼륨으로 반복된다. 듣고 있노라면 금관악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악기였나 싶다. 도입부를 완전히 장악한 음악은 이 영화를 단지 시각만으로 보지 말라고 정중하게 웅변한다. 이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서주에 해당한다. 이 곡은 영화 도처에서 계속 등장하면서 관객들의 공감각을 옴싹달싹 못하게 잡아맨다.

 

 

원숭이가 쏘아올린 뼈다귀는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으로 변한다.


니체의 동명 저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작곡했다.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책 제목을 작품 제목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니체 서문을 악보 머리에 게재했다. 슈트라우스는 “나는 철학적 음악을 쓰려는 게 아니며, 니체의 저작을 음악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다. 음악으로 인류의 기원과 발전의 여러 양상을, 니체의 초인이라는 관념에 이르기까지를 전하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표현하려 했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이 교향시가 영화를 위해 작곡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작품 구성처럼 4부로 이뤄져 있으며 8개의 부제가 붙어 있다. ‘일출’(Sunrise)로 알려진 서주(영화에 삽입된 음악)가 끝나면 1 ‘세상 저 편의 사람들에 대하여’(Of the people of the unseen world), 2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Of the great longing), 3 ‘기쁨과 열정에 대하여’(Of joys and passions), 4 ‘만가’(Dirge), 5 ‘학문에 대하여’(Of Science and Learning), 6 ‘치유 받고 있는 사람’(The convalescent), 7 춤의 노래(Dance Song), 8 ‘밤 나그네의 노래’(Night Wanderer‘s Song) 등이 이어진다. 1954년에 녹음된 프리츠 라이너가 이끄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1983년 녹음판을 들어보길 바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