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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 어떻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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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베 세이코 저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20.12.15. 출간


일본 국민작가의 남다른 연애 소설

 

다나베 세이코는 일본 문단에서 손꼽히는 작가다. 소설, 에세이, 평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쓴 240편의 저서 양도 엄청나거니와 나오키상과 함께 일본 양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고, 국가 문화공로자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성도 갖추고 있어서 2백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신 겐지모노가타리>를 쓰기도 했다. 이런 작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단편 연애 소설을 썼다. 월간 <가도카와>에 1984년 발표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작가의 유명세 덕분이기도 하지만 ‘하반신 장애 여성과 건강한 남성의 사랑’이라는 흔치 않은 이야기를 다룬 덕일 것이다.

 


파격적이었던 여주인공, 조제

 

지금도 한쪽이 장애인 남녀 간의 사랑은 화제가 되기 충분하다. 발간 당시에 비하면 의식이 많이 자유로워진 지금도 그러한데 보수적이고 편견이 심했던 36년 전에는 어떻게 반응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여주인공인 조제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 마비가 된 25살 여성이다. 성장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친엄마는 조제가 아기 때 집을 나갔다. 새엄마는 조제가 생리를 시작하자 귀찮다는 이유로 보육원에 넣었다. 조제는 열일곱살부터 친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는 손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낮에는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장 과정이 이랬으니 그녀가 평범한 성격이 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성립된다.

 


대학생 츠네오와의 사랑

 

남주인공 츠네오는 신체 건강하고 잘생긴 대학생이다.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악의를 가진 누군가 조제의 휠체어를 밀어서 조제가 넘어지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만나게 된다. 츠네오가 그녀를 도와준 것이다. 첫 만남 이후 츠네오는 조제 집을 찾아오고 밥도 얻어먹는다. 츠네오가 자취를 하던 상황도 두 사람의 만남을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담당한다. 조제의 특이한 정신세계와 판타지에 투덜대면서도 츠네오는 차츰 그녀에게 빠져든다. 소설 속 표현으로 짐작하자면 조제는 아름다웠다. 여성이 아름다우면 20대 남성에게는 모든 게 좋게 보이는 법이다. 젊은 시절에는 내면보다는 외모가 사랑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츠네오는 조제에게서 자신이 알고 있는 여대생들과는 다른 매력을 느낀다. 소설 속 표현을 빌면 ‘오래된 집 창고에서 훔친 헌 인형을 휠체어에 싣고 옮기는 듯한 느낌’이다.

 


아는 사이에서 연인으로

 

츠네오와 조제는 자주 보는 사이지만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조심스럽고, 사람 사귈 줄 모르며, 감정 변화가 급격한 조제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츠네오도 딱히 조제를 연인으로 여긴 것 같지는 않다. 츠네오는 대학 졸업 후 취업하기까지 조제의 집에 가지 못한다. 취업을 하고 나서 오랜만에 들린 조제의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며, 조제가 근처로 이사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오랜만에 본 조제는 옛날과 너무나 달랐다. 영양실조로 삐쩍 마른 데다 성마른 상태였다. 당황한 츠네오가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제는 마구 화를 내며 그를 내쫓는다. 머쓱해진 츠네오가 나가려는 순간 조제는 무너진다. “함께 있어 달라”는 간청과 함께. 그 애잔함이라니. 감정의 둑이 무너진 두 사람은 그날 육체적, 정신적으로 연인이 된다.

 


이상한 제목이 의미하는 것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조제’는 내게 ‘약국에서 약을 짓는 행위’를 의미했다. 일본인인 조제가 근원이 불분명한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독서 때문이다. 조제의 원래 이름은 야마무라 구미코다. 구미코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프랑수아즈 사강이다. 사강의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이 ‘조제’이다. 작품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구미코는 이름을 바꿨다. ‘호랑이’는 세상살이가 낯설고 어려운 조제에게 ‘가혹하고 무서운 세상’을 의미한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위협하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호랑이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든든하고 따뜻한 남자친구의 품 안이었다. 츠네오와 연인 사이가 된 후 조제는 동물원으로 호랑이를 보러 간다. ‘물고기’는 조제를 상징한다. 조제는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며 편안함과 유대감을 느낀다. 유리벽으로 보호된 채 외부 위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그녀에겐 파라다이스나 다름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장애 여성과 정상인 남성의 사랑이라는 소재도 한몫했지만 더 큰 역할을 한 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사랑의 초기에는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열기는 식어 버린다.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 바뀌거나 끝나는 이유는 환경, 돈, 권력, 용모, 젊음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사랑은 아무리 뜨겁고 순수해도 유한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의 태도에 따라 상처 입는다. 더구나 장애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조제에게 츠네오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불안한 연인이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기에 의심하고, 몰아붙이며, 집착할 수 있다. 조제는 그러지 않는다. 풍족하지 않지만 츠네오와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결혼식도, 호적 신고도,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남편과 아내로 서로를 인정한다. 조제는 츠네오가 떠나더라도 지금 함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라도 후회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조제의 사랑관이야말로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경험하며 숱한 상처를 입게 되는 젊은이들에게 작가가 속삭이는 인생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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