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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같은 원작/다른 결말, 사랑도 변한다 ; 한국판 <조제>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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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소감은 포스터의 문구와는 다른 생각이다. 

장르 : 멜로/로맨스, 드라마

제작국 : 한국

상영시간 : 117분

개봉 : 2020.12.10.

감독 : 김종관

주연 : 한지민, 남주혁

등급 : 15세 관람가


같은 원작, 다른 영화

 

<조제>는 원작소설과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원작의 메시지를 부정하고, 현대사회의 속물적인 사랑을 비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각 측면에서 보면 거리감이 더 느껴진다. 원작소설과 잇신 감독의 영화는 우리 일상처럼 다가오는데,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연출의 느낌이 너무 짙다. 배우들도 화보집에서 뛰쳐나온 모양새다. 한지민과 남주혁 같은 이가 다리미 위에 햄을 구우며 궁상을 떠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화보 사진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이나 여행지 장면도 원작과는 거리가 멀다. 감독은 도대체 어디에 방점을 찍으려 한 것인가.

 

영화에 몰입감을 주고 싶었다면 좀 덜 예쁘고, 덜 잘생긴 주인공을 찾았어야 한다.


순수한 사랑? 그게 왜 필요한데?

 

영석(=츠네오)이 조제를 만나게 되는 계기와 과정, 서로를 연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원작과 다름없다. 감독이 스토리 곳곳에 끼워 넣은, 원작에는 없는 인물들이 이야기와 주제를 달리 만드는 주역이다. 가장 주목할 인물은 영석과 내연 관계를 맺고 있는 민혜선 교수(박예진)이다(민 교수는 남자친구가 오는 중이라며 팬티만 입고 자던 영석을 깨워서 내보낸다). 내 학점을 좌우할 수 있는 연상 여성의 정부가 된다는 건 계산적인 행동의 결과다. 영석은 조제를 사귀면서 의식적으로 민혜선을 피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도를 바꾼다. 영석에게 이성 간의 애정이란 으레 조건이 붙으며, 거래도 가능하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영화에서 옷은 영석의 내심과 미래를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대학교에서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차림이다. 


좋은 사람들만의 좋은 모임

 

영석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는 또 한 명은 최교수다. 가식적이고,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한심한 인간이다(그가 영석이 아웃렛에서 산 코트를 명품으로 착각하고 당황하는 장면을 보라). 영석이 면접을 보고 온 날 최교수는 단골 바에서 (조제가 그토록 마시고 싶어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는) ‘좋은 위스키’를 함께 마신다. 최 교수는 특별히 주인에게 말해서 구해 놓은 것이라며 자랑한다. 최 교수는 영석이 지원한 회사의 임원과 민혜선 교수가 강력한 유대를 갖고 있으며 그녀의 영향력으로 면접에 떨어질 거라 알려준다. 떨떠름한 표정의 영석에게 위로를 한답시고 최 교수는 “이 사회에서 좋은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너와 나 같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그 좋은 사람들에 조제와 같은 장애인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 한 마디가 영석에게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정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영석은 최교수가 이야기한 '좋은 사람들 네트워크'에 들어갈 준비가 끝난 상태다. 여기서는 조제에게 돌아갈 수 없다.


처음부터 예정된 이별

 

원작소설과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와 달리 김종관 감독의 <조제>에서 조제를 향한 영석의 감정은 호기심이나 동정에서 유발된 불장난 비슷한 감정으로 보인다. 한지민의 조제는 장애인이지만 일시적으로나마 세속적인 영석의 기준을 만족시킬 정도로 아름답다(만일 조제 역에 평범한 외모의 여자 연기자가 캐스팅되었다면 영화는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날 때부터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다. 원작 소설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장애인 여성의 당당한 사랑’은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영석은 조제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충족된 후 미련 없이 본인이 속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그가 좋다고 노골적으로 눈빛을 흘리는 조건 좋은 미래의 배우자가 기다린다. 이미 피라미드를 신속하게 올라갈 방법을 알고 있는 영석이 왜 망설이겠는가.

 

굳이 화면을 화보처럼 멋지게 찍어야 했을까. 


제목이 간결하게 바뀐 이유

 

영석은 지도교수의 추천을 통해 좋은 직장에 취업한다(아마도 민혜선 교수의 적극적인 관여도 있었을 것이다). 퇴근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차의 운전석에는 청첩장을 손에 든 미래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외모는 조제가 나아도 모든 조건을 따지면 경쟁이 안 된다(잇신 감독의 연적 카나에를 연상해 보자). 두 사람이 탄 차가 신호등에 섰을 때 그 옆에는 조제가 운전하는 차가 서 있었다. 이 장면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처음부터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절대로 만날 수 없었던 길이다. 2. 비록 영석이 세속적인 성공을 좇아 떠났지만 조제는 배신에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래서 원작 제목에서 호랑이와 물고기를 빼고 <조제>로 줄인 것이 아니었을까.

 

조제의 눈높이에 맞춰 시선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주도권은 영석만 행할 수 있다. 처음부터 떠나고 머무는 것은 그의 결정에 달린 것이었다.


달라진 세상, 달라진 트렌드

 

세상사는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 사랑도 그렇다. 둘만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하면 수저와 냄비 하나로 살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라떼는 말이야’로 치부된다. 지금 세대에게 그런 말은 구석기 시대의 유적처럼 들릴 것이다. 결혼을 희망한다면 최소한 서울 시내 25평 전세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다(TV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실험한 결과다). 성공하려면 집안 좋은 여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남자 역시 적지 않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다. 가치관과 맞는 배우자를 고르면 그만이다. 행복은 일률적이지 않다. 거의 40년 전에 나온 원작소설과 <조제>의 메시지가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수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영화 역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짧은 풋사랑을 통해 조제도 무언가 배운 게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도 그녀의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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