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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변치 않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인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대중 감각의 블랙 유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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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를 연발하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함께 보면 흥미로울 영화다.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10분
개봉 : 2020.10.21.
감독 : 이종필
주연 : 고아성, 이솜
등급 : 12세 관람가

 


그대는 과연 차별에서 자유로운가

 

차별받아 본 경험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상대적이기에 나보다 더 능력이나 재산 등에서 우위에 있는 이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차별 받을 때의 더러운 기분을 잘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차별한다. 사장 앞에서는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면서도, 하청업체 사장들을 쥐잡듯이 잡고, 손바닥만한 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경비원을 타박하고, 주변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거지 보듯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차별을 받기 싫으면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먼저다. 이 영화는 능력과 상관없이 고학력 사회에서 학력 때문에 차별받는 상고 졸업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부조리와 부당한 행위로 점철된 과거를 파헤치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회적으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학교 나온 정직원과 여상 나온 직원의 차이는 근거없는 엘리트 의식과 부당한 차별을 낳는 원흉이다. 

 


능력의 기준이 과연 학력일까?

 

영화의 제목에 ‘영어토익반’이 들어가 있는 건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능력의 평가 기준이 ‘다 집어치우고 학력!’이라는 걸 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실제 업무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게 우선이다. 출발선이 다르기에 종착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가진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어필할 곳이 없기에 절망뿐이다. 뒤틀린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종필 감독은 상사들을 능가할 정도로 업무에 빠삭하지만 상고 졸업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사 8년차임에도 말단이 고작인 여직원들을 내세운다. 이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내에서 열리는 영어회화 공부에 열중한다.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회사 방침에 목매고서 말이다.

 

영어를 하면 삶이 좋아질까? 당시는 영어제일주의를 부르짖었지만 정작 좋아진건 사설 학원들이었다. 

 


사회 풍자에서 대중적 블랙유머로의 전환

 

7-80년대 상고 출신 여성들의 근무 환경과 이들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처우를 당시 상황과 똑같이 그려내던 이야기는 초중반을 지나면서 더 넓은 주제로 외연을 확대한다. 당시 실제로 일어나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과 IMF 당시 한국기업에 투자해서 먹튀한 외국투기자본의 횡포를 비꼬는 것이다. 주인공인 여직원들은 이들의 음모를 밝혀내고 통쾌하게 한 방 먹인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 두 가지 갈림길에 직면한다. 실화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전달하느냐, 킬링타임용 영화로서의 대중성을 강화하느냐다.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표리부동한 고학력 임직원들의 음모를 여상 출신 여주인공들이 시원하게 해결한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실화 기반 영화(Based True Story)로서의 사실감은 사라졌지만 당시 상황을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어느 것이 좋은지는 관객의 성향에 달렸다.

 

영화속 폐수 방류 사건은 실제로 당시에 일어났던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관객들은 행복했지만 갈팡질팡 이야기는 글쎄

 

레트로는 신세대와 기성 세대의 거리감을 좁히기에 최적이다. 이 영화는 최근 트렌드인 ‘레트로’ 감성을 이야기에 잘 버무려 놓았다. 회사 유니폼, 커피 심부름, 청소, 영어 공부 등 당시의 문화는 물론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소품들도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보인다. 덕분에 부모 세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들에게는 ‘라떼는 말이야’를 연발하며 추억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자식 세대인 젊은 세대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옛날 옛적’ 회사에서의 업무와 분위기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면 할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다만 외국계 투기자본, 대기업의 환경 오염, 여성 차별에 대한 비판, 고학력 사회의 모순 등 너무 많은 이슈를 한자리에 풀다 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단절된 느낌이다. 한 가지 이야기에 주력하면서 좀더 고급스럽게 블랙 유머를 선사했으면 어땠을까. 감독이 선택한대로 권선징악의 결말에 악덕 기업의 범죄 행위를 단죄하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킬링타임용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을 대다수 관중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국 땅에서 엄청난 투기를 하고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외국계 투기자본은 영화와 달리 단죄를 받지 않았다. 그 어떤 세력의 비호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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