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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배경을 현대의 강남으로 바꾼 무협지, <맹수의 도시>

by 마인드 오프너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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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현대 판타지 소설

저자 : 동은

출판 : 뿔 미디어

출판일 : 2014.01.09.

 


읽는 순간에는 시원한 킬링타임용 현대 판타지

 

현대 판타지 소설 <맹수의 도시>를 읽었다. 좀처럼 안 읽는 장르인데 제목에 혹해 손을 댔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동생과 어머니를 잃고 그 분노를 못 이겨 사고를 친 후 장기복역한 주인공이 조폭 두목이 되어 대한민국의 최고 기득권 세력과 전쟁을 벌인다는 줄거리다. 현대 서울의 강남을 배경으로 삼는 책이 왜 판타지 소설로 구분됐는지 궁금했는데 본문을 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이 책의 강점이라면 읽는 순간에는 아주 통쾌한 대리만족을 주는 킬링타임용 소설이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최악의 인간말종들을 처벌하며 현실에서는 절대로 할수 없는 짜릿한 영웅이 된다. 영화로 치자면 <베테랑>, <내부자들>, <아저씨>와 같은 작품을 보는 느낌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인간시장>과 <밤의 대통령>의 계보를 잇는 소설

 

연식이 좀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두 개의 소설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김홍신의 <인간시장>과 이원호의 <밤의 대통령>이다. 한영우가 쓴 <비스트>도 비슷한 부류다. <맹수의 도시>는 앞에 열거한 두 작품과 설정이나 등장인물, 이야기 전개가 흡사하다. <인간시장>의 장총찬, <밤의 대통령>의 김원국, <맹수의 도시>의 마도수가 모두 탁월한 무술 실력을 가진 조폭이라는 점도 같다. 이들은 조폭이면서도 조폭 이상을 꿈꾼다. 약자의 편에 선 정의의 사도를 지향한다. 장총찬이 전통 무술고수로부터 무술을 사사하고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반면, 김원국은 전 세계를 누비며 해외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괜히 밤의 대통령이 아니다. 마도수는 두 선배들에 비하면 소박하다. 강남을 기반으로 어머니와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폭들과 재벌그룹 후계자와 싸우는 게 고작이다.

 


가족의 복수를 맹세한 흙수저 주인공

 

마도수는 아버지 사업 실패 후 어머니와 동생 도영과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이 가족의 일상은 어느날 발생한 어머니의 교통사고와 도영의 실종으로 산산조각난다. 마도수는 가해자의 애인 이미수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엉뚱한 사람을 죽인다. 10년 동안 교도소 복역 중 마도수는 살벌한 싸움꾼으로 거듭난다. 출소 후에는 동생의 친구들이 동생을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차례대로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교도소 후배의 소개로 신사동파 보스를 만난 마도수는 차기 보스가 되어 원수를 찾아 나선다. 조직 간의 혈투는 사랑하는 동료와 선후배의 희생을 강요하지만 마도수는 마침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한다.

 


악은 악으로 응징한다

 

주인공 마도수는 소시민 독자들의 내면을 대변한다. 마도수의 복수행은 잔혹해 보이기도 한다. 악랄하고 악질적인 악당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작가는 마도수의 복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조폭, 부패 경찰, 검사, 정치인, 외국인 용병, 언론인, 사채업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악당들을 등장시킨다. 이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힌다. 이들의 횡포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마도수를 응원하게 된다. 마도수의 처절한 복수 기행은 하드고어를 방불케 한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손발목이 날아간다. 악당들이 하나둘 스러질수록 독자의 쾌감지수는 비례해서 상승한다. 독자들은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마도수의 활약을 보며 시원하게 해소한다.

 


이 책이 판타지로 구분되는 이유

 

이 책이 판타지로 구분되는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마도수의 말도 안 되는 전투 능력이다. 교도소에 가기 전까지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말라깽이가 10년을 버티면서 고릴라에 가까운 전투 능력을 지닌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판타지다. 아무리 덩치가 좋아도 인간의 허벅지살을 맨손으로 떼어내고 상대의 목을 힘만으로 뽑아내는 건 무협지에서나 가능하다. 외국인 용병 40명을 단신으로 죽이는 장면은 통쾌함보다는 이 작품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판타지로 분류되는 두 번째 이유는 강남 한복판에서 조폭들이 엄청난 싸움을 벌이는데도 공권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조직원들 수백 명이 죽고 죽이는 전투를 여러 차례 벌이는데도 공권력은 물론 언론도 조용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장르 소설로 시간 때우기에는 좋지만 독자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구성은 개연성과 리얼리티 면에서 아쉽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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