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은 저항이다?
흔히 록을 ‘저항의 음악’이라고 한다. 록의 형태 – 하드록, 모던 록, 프로그레시브 복 등 – 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도 록음악 속에 당대를 향한 냉정한 비판이나 진취적인 면모가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컫는 말일 게다. 물론 록음악을 하는 모든 밴드에 이 말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 저항 정신을 운운했지만 퇴폐적인 가사, 음란한 표현, 괴기스러운 퍼포먼스 등을 하며 화제를 만들고자 했던 록밴드들이 분명히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러한 평가와 앨범 판매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록밴드 머틀리 크루는 밴드 멤버들의 일탈과 범죄자에 가까운 행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1억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가 카메라를 들이대기 충분한 소재였다.
장르 : 코미디, 전기
제작 : 미국
제작년도 : 2019
상영시간 : 107분
감독 : 제프 트러메인
주연 : 더글러스 부스
등급 : 19금
록그룹 머틀리 크루의 좌충우돌 일대기
머틀리 크루는 미국의 록밴드로서 대표적인 ‘글램 메탈’ 밴드로 불린다.(미국에서는 이들 밴드에 화려하게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멤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헤어 메탈’이라고도 불렀다.) 베이스 주자이자 노래를 만들었던 니키 식스를 중심으로 기타 믹 마스, 보컬 빈스 닐, 드럼 토미 리 4인조로 구성되었다. 미국 내에서만 2,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여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록 밴드 중 하나이다. 높은 인기에 못지않게 이 밴드를 따라다니는 이미지가 있었으니 범죄자이자 전과자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록밴드들 역시 사고뭉치이자 반항아라는 이미지가 없지 않았으나 머틀리 크루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 정도로 이 밴드의 발자취는 사고와 악명으로 점철되었다.
밴드 활동에 위기를 가져온 변곡점들
머틀리 크루 멤버들은 나이가 가장 많은 기타리스트 믹 막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섹스와 마약에 미쳐 있었다. 한 가지만 해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두 가지를 함께 했으니 사건이 없을래야 없을 리가 없다. 밴드 활동 중에 일어난 사건들은 이들의 활동에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왔다. 첫 번째 사건이 보컬 빈스 닐의 음주운전 사고다. 이 사고로 닐과 동승했던 하노이 락스 멤버 래즐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상대 차량에 탄 승객 두 사람도 중상을 입었다. 닐은 연일 언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리더인 니키 식스는 헤로인 중독자였다. 어느날 약을 과다 복용하는 바람에 구급차에 실려 가는 신세가 됐다. 차 안에서 심정지로 2분간 사망 선고를 받지만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여기에 드러머 토미 리도 허구헌날 여자 문제를 일으키며 언론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런 밴드가 세계적인 밴드로 살아남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차라리 미스터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확실히 기회의 땅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었다.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퇴색되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것. 머틀리 크루 멤버들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10대에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다가 20대에 모텔에서 주사기를 꽂고 죽은 채 발견되었거나 음주사고로 교도소에 갔다 와서 평생 전과자라는 오명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 분야이든 능력이 탁월한 자에겐 관대하다. 실수를 여러 번 해도 기회를 주고자 한다. 유교 윤리가 지배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나 얘네들은 실적과 품성을 확실히 구별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개망나니이면서 스타 행세를 하는 놈들을 칭찬하자는 건 아니다. 능력과 인성은 대체적으로 별개라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뿐이다.
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남자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눈길을 끌었던 멤버가 있다. 기타리스트 믹 막스다. 막스는 다른 멤버들보다 성숙한 인간이었다. 나이도 7살 이상 연상인데다 여러 밴드를 전전하며 살았을 정도로 인생 경험도 많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발병한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평생 고생했고,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다.
그런 그가 제법 실력 있는 베이시스트 겸 송라이터를 만나 밴드라는 걸 꾸렸으니 그 기분이 어땠을까. 영화 속에서도 밴드 명을 정할 때 막스가 “이 날을 기다렸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머틀리 크루(Motley Crew)라는 밴드 명은 ‘잡다해 보이는 무리'(Motley-looking crew)에서 나온 것이다.
막스는 날강도 같은 다른 멤버들의 일탈 속에서도 별다른 일탈 없이 묵묵히 40년 간 기타리스트의 역할을 하며 밴드의 정신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 법. 2022년 그를 쫓아내려는 밴드 멤버들과 고소전을 벌이며 결국 밴드에서 축출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유유상종. 비슷한 무리들과 어울려야 마음과 몸이 편한 법이다.
굳이 봐야 할까?
머틀리 크루의 음악을 좋아하거나 궁금한 음악팬이라면 몰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굳이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장르에 해당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그나마 퀸이라는 걸출한 밴드의 결성과 성장,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카리스마 덕분에 호기심이 생기지만 머틀리 크루가 일반인들에게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까? 게다가 영화의 내용도 멤버들의 범죄와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이 대부분이라 딱히 인상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그냥 ‘타고난 능력 덕분에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고 살았다’라는 느낌 정도다.
★
'감성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무협의 대표 작가가 되기 전 용대운이 쓴 습작 작품 : [낙성무제] (0) | 2024.07.25 |
---|---|
넷플릭스 영화. 용 한 마리로 ‘반지의 제왕’ 느낌을 흉내내고 싶었던 감독, 꿈도 야무져! [댐즐] (4) | 2024.07.21 |
넷플릭스 영화. 스나이퍼 특집. 오랜 세월 저격수로 근무한 병사들에게 남는 ‘유산’은 무엇인가, <스나이퍼 레거시> (2) | 2024.07.13 |
넷플릭스 영화. 30년만에 만난 노인네들의 눈물겨운 경로잔치, <비버리힐스 캅 : 엑셀 F> (0) | 2024.07.07 |
아무리 사골국이라도 4번을 우렸으면 더 나올 골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니?.. 새로운 방향성 고민이 없다면 가망 없어 보이는 <범죄도시 4> (6) | 2024.07.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