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닮고 싶었던 가품
사람들은 어느 분야든 명품을 갖고 싶어한다. 명품의 품질이 압도적이고 희소하며 사람들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품은 명품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다. 가격도 비싸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명품처럼 보이는 가품을 팔고자 한다. 하지만 비슷하게 만들어도 가품은 명품을 뛰어넘기 힘들다. 명품처럼 보이는 가품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자세히 살펴보면 완성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댐즐]의 감독은 명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역량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자본력에서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판타지라면 딱 떠오르는 용을 내세워 멋진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지만 정작 실현된 건 중세 효녀 심청의 애처로운 꿈의 실현기일 뿐이다.
장르 : 액션, 판타지
제작국 : 미국
상영시간 : 108분
개봉 : 2024.03.08.
감독 :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
주연 : 밀리 바비 브라운
등급 : 12세 이상
용의 저주를 받은 왕국
옛날 옛적 어떤 섬에 도착한 왕이 부하들을 데리고 동굴을 탐험하던 중 용의 알 세 개를 발견한다. 때마침 용의 알은 모두 부화해서 새끼들이 나오던 중이었다. 겁이 없던 왕은 부하들에게 새끼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으로 인해 왕과 부하들은 모두 어미 용이 내뿜은 불에 타죽고 그의 후손들 역시 딸 세 명을 공물로 바치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수백년이 흐르면서 왕의 후손들은 용을 속이기 위한 교묘한 계책을 생각해낸다. 며느리를 들인 후에 그녀를 공물로 바쳐 용의 분노를 가라앉히자는 것이다. 이들의 계책을 모르는 엘로디의 아버지는 왕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회복하고 딸의 결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결혼식을 치루기로 한다. 왕자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엘로디는 결혼식 당일 남편에 의해 용의 서식지로 내던져진 채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영화 제목 [댐즐]이 '시집 안 간 처녀'를 뜻하는 이유가 있는 거다.
중세판 효녀 심청
똑똑하고 야무진 공주 엘로디는 우리 식으로 따지면 효녀 심청이 신세나 다름없다. 집안 살림은 거덜났고 몇 개월조차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공물로 삼아 집안과 나라를 구해야 한다.
중세 시대에는 왕국끼리 필요에 의해 공주들은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 되는 게 드물지 않았으니 딱히 새롭지도 않다. 다만 가난한 왕국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공주인데 엘로디가 사지에 빠졌을 때 과연 그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굴속에서 무시무시한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용을 상대로 10대의 공주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혹시라도 내가 전 재산을 걸고 내기를 걸어야 한다면 당연히 용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변수를 고려해도 그렇지 않겠는가?
무리수의 시작
감독은 이미 엘로디를 돌아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집어넣어 버린 상태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돌이킬 수 없으니 그 상태에서 엘로디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생각을 해보아도 엘로디 혼자만의 힘으로 용을 물리치고 탈출할 방법이라는게 떠오르지 않는다. 설사 용의 입에서 방사하는 화염을 간신히 피한다고 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의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 등 피지컬의 차이가 너무나 현격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권투 체급 중 가장 가벼운 라이트플라이급과 슈퍼헤비급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경기다. 그런데 이겨야 하니 답은 하나다. 어거지나 반칙을 써야 한다.
무리수의 끝은 무리수일 뿐
용과 마주친 엘로디의 첫 반응은 도주다. 탁 트인 개활지에서는 용의 화염을 피할 수 없기에 무조건 용이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도주해야 한다. 엘로디가 아니라 건장한 기사라고 해도 반응은 마찬가지다. 어줍잖은 검술로 용과 대결하려 한다면 쇳물도 녹이는 용의 화염에 그 자리에서 소각될 뿐이다.
처음부터 중후반까지 용과의 대결은 엘로디의 일방적인 도주로 끝난다. 이해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종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엘로디는 겨우 검을 손에 넣는다. 설마 저 검으로 용을 찌른다고? 용이 바보냐? 그런데 설마가 사실이 된다. 용은 엘로디가 찌르기 쉽도록 목을 대준다. 날벼락같은 전개다. 12라운드 경기에서 내내 얻어터지다가 마지막 라운드 1분 남기고 휘두른 럭키 펀치에 맞아 상대방이 다운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어이없는 결말이라니.
누구도 예상 못한 해피 엔딩
한 번 무리했으니 두 번 무리해도 상관없다. 엘로디는 용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후 왕국의 속임수를 알려준다. 수백 년 동안 속아온 용은 분노해서 왕국의 왕족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성을 초토화시킨다. 이렇게 극적인 화해와 타협은 요 근래 보지 못했다. 대단하다.
시원하게 앙갚음을 한 용과 엘로디는 이제 본격적인 모험을 떠난다. 언제 봤다고 한 마리의 용과 한 사람은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의 기분을 알 정도다. 설마 이 둘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려는 의도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모양새는 해피 엔딩인데 영화를 보는 시청자의 필링은 전혀 해피하지 않다. 가품도 등급이 있는 법이다. 중국산 가품으로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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