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흥행에 만족하는가?
잘 나갈수록 초심을 잊지 말고 더욱 노력을 하라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지키기 어려운가 보다. 한국 범죄영화사에서 기록에 남을 천만 흥행 관객으로 출발해서 네 번째 시리즈를 맞는 <범죄도시 4>를 바라보는 소회다. 언뜻 관객 숫자로 보면 나쁘지 않다.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남들은 한 번도 달성하기 어려운 천만 관객 흥행을 수시로 하니 좋은 영화일까? 다섯 번째 시리즈도 천만 관객 흥행에 성공할까? 개봉 소식을 들으면 영화관에 가고 싶을까? 두 번째 질문에는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네 번째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데도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장르 : 액션, 범죄
제작국 : 한국
상영시간 : 109분
개봉 : 2024.04.24
감독 : 허명행
주연 : 마동석
등급 : 15세 이상
트렌디한 소재, 코인과 디지털 도박
조선족 깡패, 필리핀 조폭, 부패 경찰에 이어 이번에 제작진이 선택한 악당은 엇나간 IT천재 장동철(이동휘)이다. 장동철의 손발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며 마석도 형사와 대결하는 악당은 백창기(김무열)이다. 장동철은 불법 디지털 도박으로 시작해서 코인 상장을 노리며 백창기를 사주하여 방해자들을 제거한다. 마석도 일행은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의 존재를 알아낸다. 필리핀에서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백창기는 지분을 주겠다는 장동철의 명령에 따라 온갖 뒤처리를 다 하지만 장동철이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접 범죄의 결실을 수확하기로 한다. 광수대는 온라인 도박판과 백창기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온라인 도박장 개설 경험이 있는 ‘장이수’(박지환)를 스카우트해서 일회성 온라인 도박장을 만들고 함정에 걸린 악당들을 차례대로 쓸어버린다.
잊지 말자, 이 영화는 시리즈 네 번째였다
재미도 있고 마동석의 액션도 좋고, 악당도 꽤나 능력이 있고 여러 가지로 천만 관객 영화가 될 법하다. 단, 이 영화가 시리즈의 첫 번째나 두 번째였다는 전제 아래서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이 영화는 시리즈의 네 번째다. 한 번 두 번은 통해도 네 번까지는 좀 심하다. 시리즈로서 가져야 할 일관성이나 정체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같은 구성, 같은 캐릭터, 같은 이야기의 반복은 피하고 어디서 변주를 해야 할지 고민이 있어야 했다. 실상은 같다. 마동석이 주연배우에 만족하지 않고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패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발현된 것인지 궁금하다. “이미 너희는 우리에게 중독되었잖아. 똑같이 만들어도 볼 거잖아.” 이 뜻인가?
갈수록 퇴화하는 빌런들
노골적으로 까보자. <범죄도시>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회자되었는가? 마석도라는 독특한 형사 캐릭터가 주목받았던 점 못지 않게 조선족 조폭인 장첸과 그의 부하 위성락에 대한 높은 평가가 많았다. 윤계상은 이 영화를 기점으로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 액션영화에 어울리는 연기자로 인정받았고, 진선규는 무명에서 벗어나 스타의 길에 올라서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최귀화도 코믹하지만 무게감 있는 연기로 수사대의 중심으로서 조연 입지를 굳혔다. 그런데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이러한 캐릭터들은 점차 하향평준화되어 마침내는 마동석 혼자만의 원맨쇼로 굳혀지고 말았다.
마동석의 원맨쇼 + 감성 조미료
제작자들도 마동석의 원맨쇼로 영화가 고착되는 미래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액션의 과장과 새로운 연출법이다. 1편과 2편에서의 마동석 액션에 비해 3편과 4편에서는 정통 복싱 기술이 많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마동석 펀치의 강력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음향효과도 추가했다. 마동석의 감성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변화도 추가됐다. 이제 마동석은 세상의 불의와 불의에 희생된 피해자들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수사 중 명을 달리한 선배의 아내가 운영하는 고기집에는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필리핀에서 살해된 앱 개발자의 어머니가 자살하자 범인들을 잡아 대가를 받으리라 결심한다.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일지 몰라도 영화의 완성도나 마동석 캐릭터의 장수에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씬 스틸러는 누구?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후기를 통해 ‘장이수’(박지환)의 코믹 연기를 칭찬했다. 4편을 살린 일등공신이 장이수라는 캐릭터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이 의견에 절반만 동의한다. 물론 장이수의 코믹 캐릭터는 여전히 가치를 발휘한다. 하지만 대사나 소재가 신선하거나 외의성이 있느냐하면 그렇지 않다. FBI를 FDA(Folice Dark Army; 암행경찰)로 표기하는 말장난에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데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오히려 장동철을 연기한 이동휘를 이 영화의 씬 스틸러로 꼽고 싶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국내 배우 중 야비하고 이기적이며 배신을 밥먹듯 하는 캐릭터 연기는 이동휘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뺀질거리는 연기를 잘한 덕분에 드라마 <카지노>에 이어 비슷한 역할을 자꾸 하는 동안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만족, 시리즈 정주행 관객이라면 허무
시리즈 4편은 품질만 논하면 B급 이하다. 이미 캐릭터도, 구성도, 코믹 요소도, 이야기도 다 소진되었음에도 발전된 결과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자면 이 시리즈의 생명력은 2편에서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3편부터는 계속 하향세다. 4편에서 정두홍 무술감독의 제자인 허명행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것도 하향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황야> 리뷰에서 연출 능력이 없는 무술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지적한 바 있는데 <범죄도시 4>도 다르지 않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이 시리즈를 8편까지 예상한다는데 롱런하고 싶다면 감독부터 연출력을 갖춘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 1편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어떨까. <올드보이>를 연출한 박찬욱 버전의 <범죄도시 5>는 무리일까. 기대만 해도 웅장해진다. 숨이 끊어져가는 시리즈에 제발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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