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진출한 한국 만화의 자존심
문정후라는 만화가가 있다. 대표작 <용비불패>로 유명한 작가다. 누가 봐도 단박에 반할만한 작화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잘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좁은 국내 시장 탓인지 그의 작품을 볼 수 없었다. 한때 호구지책으로 학습만화도 그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화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웹툰 시장은 물론 학습지 시장에도 진출하는 게 흔하던 시절이라 더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집어든 만화책에서 그의 흔적을 보았다. 팀 문(Team Moon)이라는 만화가 집단이었다. 팀 문은 문정후와 그의 단짝 류기운 작가가 만든 창작팀의 명칭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반가울 데가.
원안 : 나가이 고
작화 : 팀 문(Team Moon)
하데스 VS 데빌맨 VS 그레이트 마징가
데빌맨/후도 아키라는 묵시록화된 지구에서 깨어난다. 아키라는 그의 폭주를 제어해주던 단짝 마키무라 미키를 찾아다닌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키라는 저승 세계를 다 뒤집어서라도 미키를 부활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지옥으로 찾아간다. 지옥의 주관자 하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찾아가 깽판을 놓는 데빌맨의 무력 시위에 지옥은 난장판이 되고 페르세포네 역시 크게 다쳐 정신을 잃는다. 지옥으로 돌아온 하데스는 전력을 다해 데빌맨을 제거하여 아내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고 이 과정에 그레이트 마징가가 나타나 또다시 난장판을 만들어놓는다.
나가이 고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알아야
<데빌맨>은 <마징가 제트>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나가이 고가 창조한 캐릭터다. 평범한 소년 후도 아키라가 데몬 족 최강의 악마 아몬과 결합하여 탄생한 캐릭터다. 어지간한 악마들은 다 때려잡으며 악마의 속성을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손속이 잔혹하기 그지없다. 나가이 고의 최고 히트작이라고도 평가받고 있으며 나가이 고의 다른 작품인 <마징가 제트>와 <그레이트 마징가> 등과도 시간대가 교차하면서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데빌맨 대 암흑의 제왕>은 2012년 문정후 작가가 류기운 작가, 천창욱 매니저와 함께 Team MOON 명의로 일본에 진출한 후 월간 <영 매거진>에 연재를 시작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데빌맨>이나 <마징가 제트> 등 나가이 고의 전작과 세계관을 알지 못하면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그의 행적을 다시 살펴보니 이 작품 이후 일본 활동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고수>에 이어 현재는 <아수라>를 웹툰에 연재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만화가로서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사실은 반갑다. 문정후 작가를 아끼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토록 뛰어난 재능을 그냥 묵힌다는 건 용납하기 힘들다. 앞으로는 만화가 히트하면 금전적으로도 크게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본 만화계로 더 정진해서 존재감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어느 곳이든 사람의 눈은 다 비슷하다. 이미 한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이니만큼 스토리텔링에 조금 더 힘을 쏟는다면 <원피스>나 <베르세르크>와 같은 명작이 안 나올 건 또 무언가. 향후 문정후 작가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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