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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영웅 자격은 갖추었는데 영웅적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서 망한 영웅, ‘플래시(The Flash)’

by 마인드 오프너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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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에게 압도되는 플래시의 영화 속 상황을 잘 묘사해 놓은 포스터. 플래시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장르 :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국가 : 미국

개봉 : 2023.06.14

상영시간 : 144분

감독 : 안드레스 무시에티

주연 : 에즈라 밀러

등급 : 12세 관람가


충분히 매력적인 능력을 살리지 못하는

 

플래시는 ‘저스티스 리그’의 영웅 중 한 명이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면면을 따져보면 능력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인기가 없는 걸까? 일단 속도를 올리면 시간을 역행할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일 수 있으며 몸의 원자를 진동시켜 물체를 통과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단독 주연을 맡은 이번 영화에서 플래시는 그동안의 비인기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단, 능력 있는 감독을 만났다는 전제에서만 말이다. 플래시는 엄마의 운명을 돌리기 위해 시간을 역행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멀티버스 세상 속에서 다른 자아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가볍고 희극적이지만 플래시의 능력은 영웅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니 망할 수밖에

 

마블이나 디시를 비롯한 히어로 영화를 찾는 관객들은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설사 그 과정이 뻔한 클리셰로 얼룩져 있다 해도 상관없다. 영웅 영화의 감독들이 대동소이한 전개 방식을 알면서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은 히어로가 자신의 할 일을 잊거나 망설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안드레스 감독은 히어로 영화를 보는 관점에서 관객들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영화 시작 부분의 신생아들 구조 장면을 제외한다면 ‘플래시’가 영웅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 다음부터는 자기 연민과 갈등을 오가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한다. 플래시는 배트맨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래야 했을까?

아니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하라니까 왜 자기성찰에 집중하냐고...?


하... 그 좋은 속도감을 살리질 못하네?

 

영화 속 히어로는 자신만의 장기를 살려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배트맨은 배트카를 타고 박쥐 표창을 날려야 하고, 스파이더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거미줄을 쏘아야 한다. 플래시는 속도감을 살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감독은 플래시만의 장기를 어떻게 문제 해결과 연결시킬지 고민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빌딩 붕괴 현장에서 차례대로 추락하는 간호사와 신생아들을 구하는 장면은 속도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플래시의 장기 활용은 거기서 끝난다. 그 다음부터 플래시는 배트맨의 뒤에 숨어 조연을 자처하고 만다.

사건 현장에 출동하는데 배트맨의 배트모빌에 얹혀서 가는 신세라니...영웅 맞니?


영웅은 나르시시즘이 필요해!

 

영웅 중 한 사람인 슈퍼맨을 보자. 다 큰 어른이 타이즈 위에 팬티를 걸치고 망토를 입고 다니다니 제정신인가?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영웅이기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 마블과 DC 의 히어로들은 남사스럽더라도 ‘나 좀 멋지지 않아?’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면 능력을 반납하고 평범하게 사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다. 그런데 플래시는 나르시시즘도, 폼나는 아우라도, 본인의 역할과 문제 해결 능력에 자부심도 없다. 플래시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뒤처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영웅 스스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웅은 이렇게 가오를 잡아야지.


쓸데없이 등장인물만 우루루...

 

감독 역시 플래시의 화면 장악력이 부족하다고 여긴 걸까? 평행 우주로의 여행을 빌미 삼아 고거의 영웅들을 대거 등장시킨다. ‘원조 배트맨’ 마이클 키튼과 ‘원조 슈퍼맨’인 크리스토퍼 리브, 슈퍼맨의 ‘조드 장군’도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히로인으로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걸마저 추가했다. 캐릭터는 대거 늘었는데 영화의 줄거리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다. 조드 장군 일당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이 영화가 헨리 카빌의 <수퍼맨>인지 <플래시>인지 헷갈릴 정도다. 플래시에게 단독 주연을 맡겨 놓고 다른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켜서 출연 시간마저 제대로 확보해주지 못하는 감독의 연출 방식과 관점을 가장 큰 문제로 보는 이유다. 적어도 명장이라면 도구 탓을 하면 안 된다.

아니 너가 거기서 왜 나와? 조드 장군의 활약 시간이 너무 많이 부여되는 바람에 플래시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다루지도 못하는 평행우주는 그만!

 

최근 영화나 소설 등에 평행우주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늘고 있다. 평행우주라는 소재가 꽤나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활용 가능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 평행소재는 매력적으로 전개하기보다 이야기를 망칠 가능성이 더 높은 소재다. 실재로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 수작을 보기 어려운 이유다. 평행우주를 소재로 할 경우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점은 관객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집중력과 피로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다니엘 콴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경우 평행우주를 흥미롭게 풀어놓지만 전개 방식 때문에 관객들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평론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는 영화조차 그럴진대 <플래시>의 경우 평행우주를 소재로 삼아 무엇을 얻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세상의 평화와 안전은 뒷전인 영웅. 플래시는 마인드부터 다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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