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에 마약 한 스푼
영화 <Weekend In Taipei>는 2024년에 개봉한 프랑스와 대만의 합작 액션 영화다. 조지 훵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뤽 베송이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다. 이제 뤽 베송도 나이를 어쩔 수 없는것일까. 그의 전성기 시절을 빛내주던 영화 <택시>와 비교해보면 나은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 복제에 가까운데 주인공이 한국계 미국 배우 성강이라는 점 때문에 그가 출연했던 <분노의 질주>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밖에는 범죄 영화의 클리셰 그대로다. 한 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영화라는 의미다.
장르 : 액션
제작국 : 프랑스, 대만
상영시간 : 100분
개봉: 2024.11
연출: 조지 훵
주연: 루크 에반스, 성 강
등급 : 청불
DEA 요원 VS 마약 밀매 재벌
DEA 존 로러(루크 에반스) 요원은 위장근무 중에 제대로 크게 사건을 벌이면서 엄청난 양의 마약을 압수하는 실적을 올리고 휴가를 받아 대만으로 온다. 그가 이곳을 떠난 지 15년 만이다. 한편 그의 과거 연인이었던 조이(계륜미)는 재벌이자 마약 밀매업자인 광(성 강) 회장과 결혼하여 온갖 사치를 즐기면서 살고 있다. 광 회장은 자신의 측근 중 한 명이 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하는데 뜻밖에도 조이의 아들인 레이몬드(와이어트 양)가 범인으로 드러난다. 광은 레이몬드에게 사업 전모가 적힌 노트가 있는 장소를 불라고 고문하지만 노트는 이미 존에게 도착한 후였다.
나쁘지 않았던 시작이었지만...
영화 초반 존이 위장근무를 하고 있던 레스토랑 주방에서 동료 요원의 실수로 정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주방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흔히 그렇듯이 조리 도구를 이용한 액션은 정극보다는 코믹 요소가 더 많아서 이 영화의 장르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게다가 비슷한 액션 연출은 이미 성룡을 비롯한 홍콩 배우들의 영화에서 지겹도록 본 탓에 차별성을 갖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 장면이 지나간 후에는 관객의 관심과 몰입을 지속할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격렬한 싸움 끝에 획득한 가족의 행복
광은 노트를 회수한 후 조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죽이라고 지시한 후 부하들을 존 일행이 숨어 있는 호텔로 보낸다. 한바탕 드잡이질과 빨간색 페라리를 동원한 카 체이싱 끝에 존 일행은 광의 부하들에게 체포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존 일행에게 남은 건 물고기밥이 되는 비참한 결말뿐이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존은 광을 물리치고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은 레이몬드가 존의 아들이며, 레이몬드의 동생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조이의 출산 후 장면이 소개된다.
진부하고 예측 가능한 구성
스토리는 전혀 새롭지 않다.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들의 연속이다. 비밀요원과 그의 옛 애인, 그녀를 공유하는 현재의 남편, 두 사람의 대결 등은 다른 범죄영화에서도 많이 본 장면들이다. 이런 점을 예상했는지 느닷없이 조이를 운전실력이 좋다는 설정으로 풀어가지만 이미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몇 년 동안 활약한 성강의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카체이싱 장면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분노의 질주> 아류작이라는 생각만 떠올리게 된다. 배우들의 대사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며 캐릭터들의 연기를 위해 대본을 피상적으로 쓴 듯한 느낌마저 준다.
평면적인 캐릭터와 원활하지 못한 흐름
범죄조직의 수장이자 거대 조직의 리더인 광의 캐릭터가 양아치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는 건 이 영화에 치명적이다. 거대 조직의 리더라기보다는 마약 조직 중간보스에 가까운 설정이다. 존 요원과 대결해야 하는 광의 품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호적수인 존마저 품격의 저하를 함께 겪게 된다. 이야기의 맥락과 크게 관계없는 일부 장면들(조이의 페라리 구입 및 시운전이나 고향 마을 회상)이 불필요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도 문제다.
설득력이나 연출도 미흡
연출에서도 문제가 발견된다. 영화가 코미디와 액션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갑자기 존과 조이의 로맨스, 조이의 모성애가 더해지면서 감정선의 혼란이 생겨난다. 차라리 조이가 과거를 잊고 악녀로 다시 태어나는 설정이 더 좋지 않았을까. 대만이 주요 무대인데도 대부분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점도 부자연스럽다.(내가 알고 있기로는 대만이 그렇게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이 아니다.) 존과 조이가 헤어질 때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15년 만에 만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원래 관계로 돌아가는 점도 의아할 따름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이 모이고 모인 끝에 이 영화를 평범한 C급 액션 영화로 머물게 하고 말았다. 영화의 수준치고는 나름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출연시켰으나 대본과 연출의 부족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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