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실사판
2002년 할리우드 흥행의 마술사로 불리던 제리 브룩하이머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함께 또하나의 전쟁 블록버스터를 기획한다. 그들은 1993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 델타포스와 레인저 부대의 작전을 영화로 옮긴다. 수백명에 이르는 소말리아 민병대의 공격을 받고 미군이 18명의 사망자와 70여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던 절망적인 작전이었다. 비록 관련 인물들이 죽거나 현지 작전을 총괄하던 장군이 책임을 지고 퇴역하는 등 불미스러웠던 결과를 남겼지만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을 연출해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예상치 못했던 체포작전
다큐는 그날의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레인저 대원 두 명의 술회로 시작된다. 작전 당일은 훈련이 없었기에 레인저 대원들은 운동이나 보드 게임 등을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대원들은 서둘러 장구와 무기를 챙기고 블랙호크에 탑승 후 모가디슈를 향해 날아오른다. 그들 중 일부는 영원히 기지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서 말이다.
납치 작전이 구출과 생존 작전으로
델타포스와 레인저 연합작전의 골자는 소말리아 민병대 대장인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최고 부관 두 명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작전 예상 시간은 대략 30분 내외였다. 출동한 대원들 역시 작전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건물 옥상으로 침투한 델타 포스는 두 부관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납치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다. 20분 간격으로 블랙호크 2기가 RPG에 맞고 추락한 것이다. 공격 작전으로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구출과 탈출 작전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영화만큼 흥미롭지는 않으나 배가되는 긴장감과 실제감
작전에서 살아 돌아온 두 베테랑의 인터뷰와 당시 상황 재현을 통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하지만 전쟁 = 액션이라는 공식을 가진 시청자라면 영화에 비견할 정도로 흥미롭지는 않을 수 있다. 전쟁을 영화로 보는 장점이자 단점일 것이다. 스크린으로 만나는 전쟁은 전우가 죽고 부상을 당해도 결코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작전 수행 중에 있을만한 희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운으로 살아 돌아온 두 베테랑과 11일의 협상 끝에 돌아온 블랙호크 조종사 마이클 듀란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끝내지 못한 게임들과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
30분 이내에 목표를 납치하고 귀환하는 작전이었기에 투입된 인원도 적었고 화력 지원도 미비했다. 하지만 작전의 성격이 바뀌면서 상대해야 할 적은 모가디슈 시민 전체나 다름없었다. 교전은 치열했고 부상과 사망은 피할 수 없었다. 사망 18명, 부상자 73명이 다큐에서 전하는 공식적인 미군의 피해 기록이다(영화에서 이야기한 미군 사망 19명과 1명 차이가 난다.) 작전에 성공하고 돌아와서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보드 게임은 영원히 끝낼 수 없었다. 한 치 앞 운명도 알 수 없는 전쟁의 비정함을 센스 있게 표현한 연출의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영화와 다큐 모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장은 미군의 관점으로 동일하다. 악당은 모가디슈 민병대의 수장 에이디드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로 지낼 때 우리에겐 애국열사였던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도 일본 관점에서는 천인공노할 테러리스트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거의 대부분의 전쟁은 그 전쟁을 기록한 자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꾸며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철저하게 분석을 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큐 역시 100% 내용을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소말리아가 <블랙호크다운>을 만들면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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