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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통쾌한 복수 대행업자의 이야기, <선악의 쓰레기>

by 마인드 오프너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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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다이스케 저

AKCOMICS

2017년 2월 25일 출간

 

※ 19금의 잔혹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니 미성년자는 보지 않는게 이롭다.

 

당신의 어린 딸이나 여동생, 조카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는데 체포된 범인은 겨우 3-4년의 지역을 살고 사회로 나온다면 심정이 어떨까.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1년 치 신문기사만 살펴보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의지할 데 없는 서민은 검경을 포함한 사법부에 정의 구현을 기댈 수밖에 없지만 최근 판결 상황을 보면 자정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사법부라고 느껴진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사법부와 변호사 끼리의 짬짜미로 진실이 거짓으로 둔갑하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것도 흔하다. 사법 비리가 어제 오늘이 아닌데도 이 난장판을 해결하겠다는 놈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 판에 동승해서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겠다는 인간들만 넘쳐난다.

 

가뜩이나 ​억울한데 판결에서 또 한 번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들은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버린다. 1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사고도 처음에만 그토록 난리 부르스를 치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죽은 놈만 억울하다. 대다수가 사고를 기억에서 잊는 사이 가족들의 인생은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다.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건 총기 보유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돈과 권력을 믿고 마음대로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일본 만화계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들을 위해 통쾌하게 복수를 대리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다 시원하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대리인들이 출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악의 쓰레기>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복수를 대행해주는 이인조 남자들의 이야기다. 카모메 헌책방을 운영하는 ‘카모노메’와 ‘토라’는 겉으로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청탁을 받고 가해자를 찾아 복수를 대신해주는 청부살인업자들이다.

 

​카모노메와 토라는 복수대행업 파트너이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토라는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지니고 있다. ​토라는 복수 대행에 동의하지만 카모노메에 비하면 인간적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망설이기도 한다. 그의 엄마가 폭력배에게 살해당한 반면 카모노메는 아내와 딸이 권력자의 아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이들을 찾아오는 피해자들은 복수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물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 아저씨, 친구, 누나, 형들이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나면 복수 방식이 지나치다고 느끼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해악이 되는 범죄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은 죄를 무훈처럼 자랑하고 새로운 피해자를 검색한다. 경찰에 체포되면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건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생명을 빼앗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위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폄하당한다.

 

카모노메, 토라 듀엣의 복수극은 대리만족의 쾌감을 준다. 그들의 정의 구현은 정의가 무너져버린 이 세상을 지탱하는 한 줄기 희망이다. 카모노메, 토라는 억울한 피해를 입어도 누구에게 속 시원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그 지라에 무너져버린 무고한 사람들이 꿈에서라도 나타나길 원했을 인물들이다.

 

만화는 통쾌하지만 읽고 난 후에는 답답한 점도 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복수 대행 듀엣의 행동에 기대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 때문이다. 듀엣의 복수 대행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다. 사법 체계가 범법자들을 처벌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점을 기대하기엔 너무나 멀리 왔으며,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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