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도깨비 방망이’라고 불러다오
이 영화를 보며 세 번 헷갈렸다. 처음엔 장르에 대한 혼선이었다. 응? 액션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아니다. 코미디와 액션의 믹스다. 두 번째는 설정의 개연성이다. 은퇴한 특수요원들이 저렇게 비밀 기지를 만들어 놓고 무기를 숨겨 놓고 작전을 펼칠 수 있다고? 뒤에 엄청난 스폰서를 두고 있나 봐? 세 번째로 놀란 점은 엄청난 이야기의 전도다. 의문의 인물 박장군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놀라움 대신 코웃음이 터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찍은 거니?” 결과적으로 영화의 제목 <크로스> 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로 바꿔주고 싶다.
장르 : 액션, 코미디
공개 : 2024.08.09.
채널 : 넷플릭스
상영시간 : 90분
감독 : 이명훈
주연 : 황정민, 염정아
등급 : 15세 이상
전직 특수 부대원과 여형사 부부의 방산비리 뒤집기
영화는 상당 시간 동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형사 강미선(염정아)을 아내로 둔 박강무(황정민)는 전업주부다. 알뜰살뜰 외조에 힘쓰던 박강무가 진정한 정체를 드러내는 계기는 과거에 함께 근무하던 장희주(전혜진)가 나타나면서다. 이전까지의 코믹한 전개 방식이 희석되고 액션 장르의 특성이 드러난다. 희주의 남편인 김중산(김주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엄청난 국방 비리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뜻하지 않게 미선마저 사건에 휘말린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했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연상케 하지만 완성도나 개연성으로 따진다면 비교가 민망한 수준이다.
최악은 면했지만...
황정민이 아내를 외조하는 전업주부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망했다...’ 싶었다. 언뜻 생각하면 액션 연기도 잘하지만 코미디 연기에도 능숙한 황정민과 역시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염정아를 캐스팅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싶었다. 어설픈 코미디를 고집한다면 한계가 일찍 올 것 같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박강무의 진정한 정체를 드러내며 장르 바꾸기에 나선다. 코믹 장르를 고집했다면 현재보다 더 처절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것이다. 위험한 장르 섞기를 시도하면서 캐릭터 설정이나 개연성은 신경을 쓰지 않은 덕분에 가까스로 최악은 피했지만 차악을 피하지는 못했다.
퇴직한 특수부대원들의 능력이라니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캐릭터 설정이다.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맡은 역할에 맞게 성격과 일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캐릭터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캐릭터는 박강무와 장희주다. 박강무는 작전 중에 부하를 죽게 만든 책임을 지고 현직에서 물러난 인물이고 장희주 역시 현직을 떠난지 오래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들이 박장군을 찾기 위해 벌이는 작전에는 엄청난 장비와 무기들이 동원된다. 심지어 집안에 비밀창고마저 갖추고 있다. 자연스럽게 장희주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핫바지에 불과한 악당들
액션 영화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부분이 ‘주인공을 돋보이고 싶다면 악당을 강하게 설정하라’는 거다. 악당들은 모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주인공만 먼치킨으로 설정한다고 해서 주인공의 파워를 설득력있게 전달하지는 못한다. 주인공이 악당의 방해와 폭력에 의해 고난을 맞고 가까스로 해결하면서 목표를 달성해야만 영화의 흥미도는 자연스럽게 고조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 점을 망각한다. 박강무가 악당들의 소굴에 들어가서 김중산을 구해 탈출하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경비대원들은 모두 장님들인가? 박강무가 해치운 경비원의 제복은 어떻게 맞춤복처럼 보일 수 있는가? 박강무가 앰뷸런스를 끌고 나와도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만 들 뿐이다.
반전을 쓰는 법만 봐도 클래스가 보인다
반전은 가장 강력한 흥미요소이자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필살기이지만 그 위력 만큼이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킴은 물론 그동안 깔아놓은 이야기 구성 요소들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 급의 반전을 만나기란 그래서 극히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명훈 감독은 반전을 극적인 재미 요소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일개 정보원이었던 인물이 어떻게 3조 5천억원 대의 방산 비리를 주물럭거리고 사성 장군을 즉결처형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생략되어 있기에 반전은 즉흥적이고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일 뿐이다. 재주껏 휘두를 자신이 없다면 아예 포기하는 게 더 나은 법이다.
그럴듯한 조합, 하지만 결과는 썩...
몇 조원대의 방산 비리를 꾸미고 장군들과 고위 관료들이 포함된 작전을 구사하는 인물치고는 휘하에 둔 병사들의 작전 수행도나 훈련도가 형편없다. 은퇴한 후 전업주부로 살던 전직 정보원과 여형사의 난입에 무너질 정도의 조직이라면 동네 양아치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캐릭터 간의 파워 밸런스는 엉망이고, 이야기는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3조 5천억원의 방산 비리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미스터리다. 흥행하는 영화는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한다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를 곱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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