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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사

귀 기울여봤어??

by 마인드 오프너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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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왕회장의 불호령

 

몇 년 전인가 신문을 보다가 한 광고에 눈길이 멎었다. 현대중공업 광고였다. 압도적인 비주얼 아래 내 눈길을 사로잡은 헤드라인은 딱 3자였다. “해 봤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해봤어’라니? 광고 문구를 읽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마음속을 헤집는 명쾌하고도 강렬한 이 문구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임무 수행이 어렵다고 보고하는 직원들에게 일갈하던 멘트라고 했다. ‘해봤어?’ 시리즈 광고를 보니 맨주먹밖에 없었던 정주영 회장이 어떻게 현대그룹을 일으켜 세웠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예 불가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해 보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일단 해 볼 것. 그러다 보면 일이 풀리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가 현대조선소를 짓기 위해 영국 은행장과 담판을 지을 때의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작은 문제나 장애만 만나도 포기하고 주저앉는 우리들에게 통렬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선문답’ 같은 광고였다.

 

현대중공업의 도전정신과 기업 이념을 정주영 회장의 한 마디로 표현했던 멋진 광고


한 브랜드 차량이 70%가 넘는 희한한 나라

 

우리나라 도로를 보면 특이한 현상이 있다. 도로 위의 자동차 중 현대/기아 자동차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두 회사 차량을 합치면 80% 이상이 넘을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이런 경우는 찾기 힘들다. 특정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많아도 20%를 넘지 않는다.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생긴 이유를 추정하자면 1. 이왕이면 자국 자동차를 사자는 애국심 2. 국산차에 비해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수입차 3. 일제 차 불매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을 독과점한 덕분에 현대/기아는 경쟁사들보다 수월하게 기반을 굳히는 데 성공했다. 현대/기아가 오늘날 글로벌 제조사로서 서기까지 국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무작위로 찍은 88올림픽 도로 위의 풍경. 현대/기아 차가 아닌 차를 보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보기 힘들다.


빛바랜 창업가 정신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대/기아는 더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어서 소비자 기대에 보답하는 게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기아차 소비자들은 언제부터인가 고객이 아닌 ‘호갱’으로 불린다. 수천만 원~1억 원이 넘는 소비재를 사고도 제대로 AS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은 고객의 과실’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불만 수위는 이제 인내 가능한 수위를 넘은 느낌이다. 꾹 참고 있던 소비자들은 이제 행동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고자 한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피해 사례를 보면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제조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이 이렇게 비화된 데에는 국민보다 기업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국토부의 책임도 크다. 왕회장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현대 자동차가 프리미엄을 표방하며 출시한 신차들의 고장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격만 프리미엄, 품질은 Free미엄

 

현대차는 자사 브랜드 고급화 전략으로 제네시스를 별도 브랜드로 런칭해서 공격적으로 홍보해왔다. 현대 측 주장의 요지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대변되는 독삼사(벤츠, BMW, 아우디)를 뛰어넘는 고품질 차량’이었다. 대대적인 홍보 후에 현대가 내놓은 펠리세이드, G90, GV80 등은 기존 제품군을 뛰어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껍데기에 있어서는. 하지만 시장에 나온 제품 퀄리티는 현대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했다. 오히려 퇴보했다. 검차를 제대로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고가 속출했다. 차를 뽑은 지 며칠도 안 됐는데 차가 서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화재가 나는 고장 사례가 뒤따랐다. 고장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현대의 대응이었다. 소비자의 말을 흘려듣는 건 예사고 모든 고장 원인을 ‘고객의 실수’로 전가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러한 불량 사례를 알렸다는 이유로 현대차로부터 고소를 당한 유튜브 업체는 정의선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했다. 이 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동의를 표한 상태다. 현대는 가격만 프리미엄을 지향했을 뿐 제품 퀄리티나 고객 서비스는 전혀 프리미엄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현대가 그토록 강조했던 프리미엄의 수준이라는 게 겨우 이 정도였나.

 

벤츠가 세계 최고의 차로서 흉내낼 수 없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아올리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정성어린 고객 응대가 있었다.


귀기울여봤어?

 

현대는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있다. 본인들이 차를 잘 만들어서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는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지만 길어지면 치명적이다. 소비자들이 바뀌고 있다. 가격이 치솟는 현대 자동차를 두고 이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돈이 없어 수입차를 사야 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실제로 일부 모델의 경우 현대차가 경쟁 수입차보다 비싸다. 가격 우위가 사라진 지금 남은 건 관리와 AS, 고객 응대 품질이다. 심지어 일제 불매운동에 참여한다며 일제차를 사지 않던 소비자들도 굳이 불편과 수모를 감수하며 현대차를 살 이유가 없다며 등을 돌리고 있다. 명확한 이유 때문에 떠난 소비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현대 임직원들은 언제까지고 ‘국민들이 현대차를 사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냉정해진 소비자들의 경고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회장이 모른다면(모른다는 게 웃기는 말이지만) 회장을 보좌하는 임직원들이 직언을 해서라도 일깨워야 한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정주영 회장의 말을 빌어 경고해주고 싶다. “소비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나 봤어?”

 

현대차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프리미엄을 주장하기 이전에 고객의 소리에 먼저 귀기울여 봐야 한다. 그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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