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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사

서양과 동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 페르시아 전쟁(1, 2차 침공)

by 마인드 오프너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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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군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불운이 겹치면서 전쟁에서 패배했다.

 

페르시아 전쟁은 B.C 492년부터 페르시아가 세 차례나 그리스 연합국가들과 벌인 전쟁입니다. 당대 최대의 제국 페르시아는 최초로 오리엔트 문명권을 통일한 나라로 지금으로 치면 미국이나 마찬가지 위상의 나라였지요.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별 볼 일 없는 시골뜨기처럼 우습게 보여서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놀랍게도 최후 승자는 그리스였습니다. 병력이나 전력으로 볼때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리스는 도대체 어떻게 싸웠길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걸까요?

 


 

1차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

 

 

페르시아는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계 이오니아인들을 정복하고 총독을 부임시켜 다스리게 합니다. 사사건건 총독의 간섭을 받게 되자 밀레투스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지요. 이때 아테네는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전리품을 챙기라는 밀레투스의 꼬임에 빠져 반란을 지원합니다. 전쟁에서 이겨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기둥뿌리를 뽑힐 수도 있었던 멍청한 결정이었지요.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반란군이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페르시아의 주요 도시인 사르디스에 입성해서 신전을 불태운 겁니다. 고대에는 신상이나 신전을 훼손하는 행위는 ‘신성 모독 행위’로 여겨져서 사형에 처해지던 중죄였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페르시아는 반란의 배후에 그리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1차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입니다. 사실 다리우스 1세는 이 출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국의 얼굴에 먹칠을 한 말썽꾼들을 밟아줘서 반란을 진압하고, 배후세력인 아테네도 손을 봐줌으로써 페르시아의 위상을 널리 과시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싸우지도 않고 끝난 1차 원정

 

 

페르시아와 아테네 사이에는 에게 해가 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B.C 492년 300척의 선단을 구성하여 원정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오니아 지방에서 에게 해를 건너 직진하지 않고 해안선을 따라 빙 돌아가지요. 직진해서 아테네로 가지 않고 왜 멀리 돌아갔느냐? 이때는 나침반도 없었고, 항해술도 조악했던 시절이라 망망대해를 마음대로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바다를 항해할 때 해안선을 따라가며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의 사위인 마르도니우스 장군이 이끄는 페르시아의 대함대는 아테네로 향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아테네 시민들은 난리가 났지요. 그런데 올림푸스의 신들은 아테네가 망하는 걸 원치 않았나 봅니다. 페르시안 군을 실은 배들은 물길 험하기로 유명한 아토즈 곶에서 풍랑을 만나 군인 2만 명과 배 300척이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1차 전쟁은 페르시아군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2차 페르시아 침공

 

 

1차 원정의 패배는 다리우스 1세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세계 챔피언이 무명 선수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꼴이었으니까요. BC 490년 페르시아는 다시 아테네를 침공합니다. 이번에는 에게 해의 섬을 잇는 경로를 따라가는 전략을 세웁니다. 그리스인들은 다시 한 번 멘붕에 빠지죠.

다리우스 1세는 침공 전에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사신을 보내어 항복을 권합니다.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이 권유를 받아들였는데 아테네와 스파르타만 거절합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왕이 페르시아 사신을 우물 안으로 걷어차는 장면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페르시아 보병 25,000명과 기병 1천 명은 마라톤 해안에 상륙합니다. 아테네는 전령을 보내 스파르타에게 도와달라고 하는데요. 스파르타 애들은 황당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종교 행사 중이거든? 행사 끝나면 갈테니 그 동안은 너희들끼리 잘 해 봐.”

 

졸지에 혼자 페르시아군을 막게 된 그리스군은 수성전을 할지, 나가서 싸울지 치열하게 논의합니다. 명장 밀티아데스 장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마라톤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라톤 언덕에 진을 칩니다. 아테네군의 숫자는 고작 1만 명. 두 배도 넘는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투를 앞두고 올림푸스 신들이 다시 아테네를 도와줍니다. 페르시아 군대가 둘로 나뉜 겁니다! 마라톤에 15,000명을 남겨 두고, 나머지 1만 명은 아테네로 진격한 거죠. 일종의 양동작전을 쓴 셈인데 이 결정은 커다란 실수로 밝혀집니다.

 


 

전략과 전략의 대결, 마라톤 전투

 

 

병력이 둘로 나뉘었다고 해도 페르시아 군 병력은 여전히 그리스군보다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페르시아군은 팔랑크스의 약점을 헤집을 수 있는 기병과 보병, 궁병까지 있었죠. 페르시아 사령관은 보병을 가운데 세우고 기동력이 좋은 기병을 양옆으로 이동시켜서 팔랑크스의 측면과 후면을 공격하고자 합니다. 보병이 버텨주는 동안 기병들이 팔랑크스의 측면과 후면을 공격하면 전투를 쉽게 끝낼 수 있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의 수를 다 읽고 그 전략을 역이용하기로 합니다. 종대 진형을 잘라서 4열로 만들고 팔랑크스의 가로 진형을 크게 늘입니다. 횡대를 넓힌 직사각형 형태 진형을 만든 후 양 끝에는 최강의 병사들을 배치해서 강화합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 번째 이유는 페르시아 보병들의 무장이 튼튼하지 않았기에 팔랑크스를 4열로 줄여도 제한시간 내에 격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페르시아 군은 직물 터번과 아마포로 만든 ‘튜니카’를 착용하고, 나무와 동물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착용했는데 그리스 보병들에 비해 허술했거든요.

두 번째로는 상대 기병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밀티아데스는 진지 양쪽에 강이 흐르는 전장을 골라서 가로로 진형을 늘인 팔랑크스의 양 측면이 강과 인접하도록 함으로써 적 기병이 측면과 후면으로 기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대승리

 

 

팔랑크스는 페르시아군을 향해 전진합니다. 중앙 보병은 측면보다 전진 속도를 늦추어서 학익진과 같은 진형을 형성합니다. 날개의 끝부분에 있는 그리스 병사들이 페르시아 보병을 후려 패며 전진합니다. 중장보병들이 페르시아 궁병들의 사정거리에 들어가는 순간 밀티아데스는 팔랑크스 중장병들에게 달리라고 명령합니다. 페르시아 궁병들의 화살은 빠르게 달려온 팔랑크스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한 채 추풍낙엽처럼 무너집니다. 페르시아 군의 사카족 도끼병들이 팔랑크스를 막아보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페르시아 군은 날개 모양의 팔랑크스 진형에 갇혀서 박살나지요. 이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200명의 사상자를 낸 데 비해 페르시아 군은 6천4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맙니다.

전투를 승리한 후 밀티아데스는 병사들과 아테네를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완전무장한 채로 이들은 30km가 넘는 거리를 세 시간 만에 주파해서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테네에 도착한 페르시아군들은 마라톤에 있어야 할 중갑보병들이 거기 있는 걸 보고 물러납니다.

 


 

마라톤 경기의 기원

 

 

마라톤 경기는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린 후 사망한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해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 주장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전령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거든요. 다만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는 이야기는 등장합니다.

마라톤 경기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미셸 브레알 교수가 제안해서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당시 마라톤 코스는 마라톤 평원부터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까지로 거리는 36.75km였다고 합니다. 마라톤 대회의 거리가 42.195km로 확정된 시기는 1908년 4회 런던 올림픽 때였습니다. 원래 대회 출발 지점이 주경기장이었으나 경기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왕실의 요청 때문에 윈저궁으로 출발선을 변경하면서 거리가 195m 늘어났다고 합니다.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도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페르시아는 마라톤 경기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인들의 후손인 이란에서는 지금까지도 마라톤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1974년에는 종목에 마라톤이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속이 참 좁은 사람들이에요. 그럴 거면 잘 싸워서 이기든가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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