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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사

전투 식량의 선구자, 나폴레옹과 통조림

by 마인드 오프너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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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냉동식품, 가공식품이 발달해서 요리를 못해도 먹고 싶은 음식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참치나 햄, 꽁치 통조림을 기반으로 다양한 요리도 할 수 있죠. 지금은 이렇게 편리하게 먹는 통조림이 원래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먹기 위한 전투식량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 통조림의 발명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은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습니다.

 

통조림은 원래 전투식량이었다.

 


 

군인들을 위한 전투식량을 개발하라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성공의 열매를 가져간 이는 민중이 아니라 나폴레옹이었습니다.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정복하려는 야심을 갖죠. 그러기 위해서는 군대를 우선 강화해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무대로 전쟁을 치렀는데 병사들이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서 굶주리거나 괴혈병에 걸리는 일이 많았거든요. 심지어 나폴레옹 자신도 굶주림으로 고생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군대를 강화하려면 우선 병사를 잘 먹여야 합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 육군은 즉시 새로운 전투 식량 개발에 들어갑니다. 전투식량이 가져야 할 요건은 사실 간단해요.

1. 장기간 보존할 수 있고 2. 병사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3. 어떤 상황에서도 먹기 편해야 하며 4.최우선 요건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맛도 있어야 합니다.

 

전투식량의 요건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통조림의 아버지’ 니콜라스 아페르

 

 

프랑스 육군은 1795년에 12,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전투식량을 공모합니다. 엄청난 상금을 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응모를 하지요.  니콜라스 아페르(Nicolas Appert)라는 인물이 우승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아페르는 연구 끝에 1804년에야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의 해결책은 병조림(canning jar)이었습니다. 입구가 넓은 병에 삶은 고기와 야채 등 음식을 넣고 병을 중탕한 다음 코르크 마개와 왁스로 밀봉하는 방식이었죠.

프랑스의 한 신문은 병조림에 대해 “아페르 씨는 계절을 붙잡아두는 방법을 발견했다. 병 안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며 극찬을 했습니다. 아페르는 병조림에 특허를 받지 않고 공개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아페르의 병조림은 프랑스 군의 보급 체계에 크게 기여합니다. 취사 시간이 절약되고, 조리 기구가 없어졌으며, 부대 이동 속도도 빨라졌고 보급부대 부담도 크게 줄었습니다. 이러한 병조림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하고 유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병조림을 개발한 아페르.

 


 

현대 통조림의 아버지 피터 듀란드

 

 

병조림은 혁신적이었지만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리여서 깨지기 쉬웠어요. 전쟁터에서는 무시 못할 단점이었습니다. 병조림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 영국 정부의 고민을 해결한 사람은 피터 듀란드(Peter Durand)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듀란드는 홍차를 보관하는 통인 캐니스터(canister)를 참조합니다. 철로 깡통을 만들면 산화 성질 때문에 음식물이 상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양철로 통조림 용기를 만듭니다. 듀란드는 1812년에 1천 파운드를 받고 돈킨(Bryan Donkin)과 홀(John Hall)에게 통조림 제조 특허를 넘깁니다. 돈킨과 홀은 1812년 세계 최초의 통조림 공장을 세우고 통조림을 만듭니다. 초기에는 군대에 납품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 통조림이 인기를 끌자 이들을 위한 통조림도 만들기 시작하죠.

 

양철 통조림을 최초로 만든 피터 듀란드

 


 

병의 원인이 된 통조림

 

 

통조림도 처음에는 불량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불량을 개선한 온전한 통조림이 출시된 것은 1819년에야 가능했습니다. 통조림 불량의 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납중독이었어요. 초기 통조림들은 사람이 납땜으로 뚜껑을 밀봉했는데 이 때문에 납 중독에 걸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1848년 북극에서 사라진 영국 존 프랭클린 탐험대는 통조림 납중독으로 몰살당한 걸로 추정됩니다. 존 프랭클린 제독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134명의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그린란드에 도착한 후 소식이 두절됐는데요. 영국해군본부가 이들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탐원대원 세 명의 시신을 묻은 무덤만 발견하죠.

1981년 알버타 대학 인류학자 오웬비티가 이들 시신을 발굴해서 검시한 결과, 시체에서 결핵 흔적과 정상 수치의 10배가 넘는 납을 발견합니다. 검시팀은 탐험대가 8,000개 이상의 통조림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이 납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통조림 불량의 두 번째 원인은 살균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기술은 밀폐는 잘 했는데 그 전 단계의 살균을 제대로 못 했어요.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미생물 증식에 더 도움이 될 뿐입니다.  보툴리누스균이 통조림 안에 잔뜩 퍼지게 되니까요. 존 프랭클린 탐험대도 납중독과 함께 보툴리누스 중독증을 의심받았습니다.

 

탐험대와 함께 사라진 존 프랭클린 제독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이 두 가지 불량을 개선한 통조림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통조림 따개가 없다는 거였어요. 초기 통조림은 지금처럼 작지도 않아서 따는 과정 자체가 노동이었죠. 당시 제조사들이 제품 겉에다 "끌과 망치로 따서" 먹으라고 적어 놔서 소비자들은 칼, 망치, 못 등을 이용해서 통조림 뚜껑을 열었다고 합니다. 군인들도 총검으로 통조림을 따서 먹었고요. 정말 불편했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도 당시 사람들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통조림 따개는 그로부터 48년 뒤인 1858년에야 미국에서 등장하거든요.

 

당시의 통조림. 여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세상 참 좋아졌네~ 원터치캔

 

 

통조림 따개는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따개가 출현합니다. 통조림 뚜껑 위에 뽀족한 부분을 걸어서 빙글빙글 돌려서 뚜껑을 여는 방식이 가장 흔했죠. 원터치 캔은 1959년 발명되었습니다. 덕분에 통조림을 사 먹어도 예전처럼 오랫동안 뚜껑을 따기 위해 힘들이거나 손을 베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원터치 캔방식은 방식에 따라 이지 오픈 엔드 (E.O.E/Easy Open End)와 이지 필오프 리드( Easy Peel-Off Lid/EPOL) 방식으로 나뉩니다. 이지 오픈 엔드 (E.O.E/Easy Open End)방식은 햄이나 과일, 생선 통조림과 같은 곳에 많이 쓰이는데요. 금속 고리를 잡고 잡아당기면 뚜껑이 열리는 방식입니다. 이지 필오프 리드( Easy Peel-Off Lid/EPOL) 방식은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뚜껑과 손잡이 부분에 알루미늄 포일 접착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참치캔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원터치 캔이 있기까지 많은 개선과 도전의 역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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