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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인간의 자격’에 대한 씁쓸한 자기 성찰, <Bem~Become Human>

by 마인드 오프너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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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된 <요괴인간>은 시대적 요청을 따르는 산뜻하고 댄디한 용모로 갈아입었다.

 

장르 : 애니메이션, 액션, 서스펜스, 공포
제작국 : 일본
상영시간 : 90
감독 : 히로시 이케하타
주연 : 코니시 카츠유키

 

 

반세기 전에 탄생하여 인기를 끈 요괴 애니

 

1968년 10월, 일본 후지 TV는 새로운 애니를 방영했다. 당시 일본은 요괴물의 인기가 엄청났다. 이 애니의 기획 의도는 당시에는 소박했다. 트렌드에 편승해서 높은 시청률을 끌어내려는 것일 뿐이었다. 노림수는 제대로 적중했다. 방송 결과 무려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해당 애니는 70년대에 국내에서 TBC를 통해 방영됐다. 역시나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애니 제목은 <요괴인간>이었다. 이제는 5-60대로 접어든 당시의 시청자들은 지금도 이 작품을 <요괴인간>으로 기억한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벰, 베라, 베로. 나름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멋진 외모는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난 다크 히어로

 

19세기 초 한 과학자가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감행한다. 인간보다 강한 육체와 올곧은 마음씨를 가진 생명체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과학자는 끝내 실험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의지가 너무도 강했던 탓일까. 과학자가 실험에 사용한 배양액에서 저절로 생명이 탄생한다. 이들은 ‘자아’의 의지로 생명체의 요건을 갖춘 것이다. 벰, 베라, 베로는 이처럼 탄생 배경부터 독특한 요괴인간들이다. 이들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여행 도중 인간을 해치는 요괴들을 퇴치하는 이유는 언젠가 자신들도 인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의로운 행동으로 인간을 구원하는데도 인간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인간 기준으로 볼 때 추악한 외모 때문이다. 꽤나 시대를 앞서갔던 '다크 히어로'인 셈이다. 시리즈 내내 이 작품은 ‘진정한 인간을 결정짓는 요소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시크하게 재탄생한 벰, 베라, 베로. 강남 성형외과에서 성형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들 잘 생겼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요괴인간

 

새롭게 돌아온 <요괴인간>은 모든 면이 달라졌다. 일단 제목이 다르다. <Bem~Become Human>이다. 주인공이 벰이라는 사실을 못박았다. 주제는 오리지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악당인 맨스톨 박사와의 갈등과 대결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격은 과연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관람객들은 악당인 맨스톨 박사와 벰을 비교하면서 생체적 특징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을 결정짓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불멸의 SF영화가 된 <블레이드 러너> 역시 개조인간들이 던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화두가 화제가 되었다. 다만 이 애니의 경우 화두가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경계한다. 흥행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인다. 철학적인 화두는 분위기와 벰의 내면으로 조지고, 작품의 방점은 액션에 둔다. 요괴인간들의 추악했던 외모는 전부 산뜻하고 멋지게 변했다. 벰이 오리지널의 외모였다면 과연 소니아가 마음을 주었을지 궁금하다.

 

벰의 <트루먼 쇼>가 끝나고, 요괴인간으로 각성하게 되는 순간. 벰의 일상 속 모든 것이 맨스톨이 연출한 가공의 것이었다.


 

<트루먼 쇼>를 향한 오마주?

 

애니가 시작돼도 한참동안 벰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아이즈버그는 ‘도라코 케미컬’이라는 제약회사 홍보실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에게는 아들, 딸과 아내가 있다. 아이즈버그의 절친 버제스, 야심만만한 제약회사 사장, 약간 흐리멍덩한 부장 등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이 되풀이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이즈버그의 가정 내 상황과 출근길에서의 상황이 매번 같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빵집 주인과 신문 키오스크 주인의 대사마저 매번 똑같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영화 경험이 풍부하고 눈치 빠른 관람객이라면 벌써 이쯤에서 감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 이 상황은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쇼, 1998>에서 보여준 연출 상황과 같다. 벰의 요괴인간으로서의 특성을 이용하기 위해 ‘자아’를 없애려 했던 맨스톨의 작품이다. 벰은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분노하여 요괴인간으로 변한다.

 

 

벰이 정신을 잃으면 비로소 연기를 멈추는 사무실 직원들.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 알쏭달쏭 결말

 

벰은 맨스톨과 1:1로 대결한다. 인간이 되는 방법을 묻는 벰에게 맨스톨은 실현 불가능한 방안을 알려준다. 간신히 소니아가 요괴로 변하는 것을 막은 벰은 마침내 인간을 포기하고 요괴인간으로 살 것을 선언한다. 소니아가 곁에 있어준다면 인간/요괴인간의 정체성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소니아는 맨스톨에게 기습적으로 살해당한다. 이 광경을 본 벰은 대노하여 맨스톨을 끝장내 버린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애니를 끝냈어야 한다고 본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반전이기는 하지만 쉽게 승복하기 어렵다. 그나마 제대로 벰의 소원을 들어준 것도 아니다. 인간이 요괴의 눈동자를 할 수 있다면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벰의 상태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러한 결말은 새로운 작품을 위한 사전포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상이 맞다면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거의 확정인 셈이다. 다만 시리즈의 주인공인 벰을 어떻게 부활시킬지가 의문이다. 자신의 작품만 챙기느라 바빴던 히로시 감독의 결정 때문에 후속작 감독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음...여기서 끝냈어야지 괜히 사족을 붙여가지고...에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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