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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이 아닌 성장소설과 판타지로 승부하다, <녹나무의 파수꾼>

by 마인드 오프너 2020.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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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일반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윤옮 역
소미미디어
2020.03.17

 

 

추리소설이 아닌데도 이렇게 멋짐?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에는 추리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다양한 인연을 중심으로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을 그려나가면서 동시에 무력하고 볼품없던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멋지게 풀어놓는다.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능력을 기반으로 추리소설이 아니지만, 흥미롭게 사건 전개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판타지 소설을 완성했다. 범인도, 형사도, 기막힌 트릭과 반전도 등장하지 않지만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작가의 다른 작품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강력하게 일독을 추천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대가의 솜씨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결정적인 정보를 먼저 전하자. 이 소설은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 범죄도, 살인도, 범인도, 명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흐름을 같이 한다. 극적인 반전은 없다. 많은 페이지를 넘긴 후에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는 책이다. 하지만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답게 독자가 책을 놓지 못하도록 조금씩 빵조각을 뿌려 놓는다. 본업이 추리소설 작가가 이와 같은 소설을 쓴다는 게 놀랍지만 작가의 경력이 35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생각되기도 한다. 35년 외길을 걸어왔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싶기도 하지 않겠는가.

 


너무 많이 상상하지 말 것

 

사전지식 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상상을 한 나머지 오해를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나 다른 추리소설처럼 범인과 형사가 쫓고 쫓기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녹나무의 파수꾼’이라는 제목부터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너도밤나무 집의 비밀>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살인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사건은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사람과 사람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고, 오해를 풀어주며, 마음 속에 응어리진 감정들을 풀어주고자 하는 인내와 집념의 시간들이 쌓인 사건들이다. 범죄를 주 사건으로 하는 추리소설이 인간의 악을 조명한다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선한 면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다르다. 그러니 게이고의 전작들을 연상하고 상상하면 독서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녹나무 파수꾼이 된 불량청년, 레이토

 

소설의 화자는 20대 청년 레이토이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막장인생의 주인공이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로 직장 사장과 갈등 끝에 공장 기계를 훔치려다 체포되어 절도죄로 수감된다. 그런 그에게 엄마의 배다른 언니가 나타나 감옥에서 빼내줄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한다. 레이토로서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모인 치후네는 레이토에게 ‘월향신사’의 ‘녹나무’ 파수꾼이 되라고 한다. 이 녹나무는 신령한 존재로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온다. 레이토는 녹나무에 그가 모르는 비밀이 있음을 알아채지만 치후네는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레이토는 파수꾼으로 근무하면서 여대생 유미와 그녀의 아버지 사지, 소키와 도이치로 부자의 인연 등을 살피면서 점차 녹나무에 얽힌 비밀과 치후네 이모의 비밀을 알게 된다.

 


막장인생 주인공의 성장 소설

 

이 작품은 녹나무를 둘러싼 군상들의 애환과 삶의 기록을 통해 사람 간의 인연을 조명하는 동시에 무력하고 보잘 것 없던 레이토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레이토는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유미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다. 치후네와 다니면서 지금까지 모르던 상류사회 문화를 접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꿔간다. 그 결과 그룹 사장단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복여동생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씻고 싶었던 치후네의 의도가 꽃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레이토가 무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홀로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느새 그를 응원하게 된다.

 


유감없이 발휘한 추리소설 작가의 재능

 

녹나무를 통해 후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기억을 전한다는 개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랜 짬밥으로 이러한 미스터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는다. 그 과정에서 본업인 추리소설 작가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녹나무에 얽힌 비밀과 녹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비밀을 보여줄 듯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지하며 따라오도록 한다. 이러한 능력이야말로 게이고가 35년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추리작가로서의 능력이다. 게이고만의 이러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아주 평범하거나 아주 허황된 이야기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이 작품의 성향으로 볼 때 게이고의 차기 행보는 추리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나니와 백화점의 기적>과 이 작품의 맥을 이은 판타지 소설을 계속 발간하리라 본다. 추리작가의 구성 능력에 탁월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능력을 더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번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진심으로 기대된다.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독자층

히가시노 게이고 열혈독자
미스터리 및 추리소설 애독자
감동이 있는 성장소설 애독자
힘이 되는 이야기나 위로를 받고 싶은 독자

 

 

 

한줄 평 :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잡은 추리 마스터의 상상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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