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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추천 신무협. 무협소설 위의 무협소설 ; 게으른 천하제일 암기고수의 방랑기를 그린 좌백의 <비적유성탄>

by 마인드 오프너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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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판무에 질린 무협독자라면 강추!!!!

 

장르 무협

작가 좌백

발매 기간 2003. 08. 22. ~ 2005. 06. 08.

권수 5권 (完)


좌백 무협은 다르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무협 등 장르소설은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특히 무협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드물게 이러한 평가가 무색해지는 무협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좌백의 무협이 좋은 사례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다 그렇지는 않다)은 무협이면서 무협이 아니다. 반무협이라고나 할까. 건강 문제로 연재를 하지 못하는데도 여전히 그의 팬이 많은 이유다. 필자도 그렇다.


목표 없는 주인공으로 완성한 이야기

 

<비적유성탄>은 좌백 무협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이 천하제일고수인 점은 최근 판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하층 출신이며 아내를 병수발하느라 청부살인을 저지르며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점은 같지 않다. 삶의 목표도 없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겠다는 주인공은 요새 판무 작가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설정이다. 가진 능력은 최강인데 주목받지 않고 살겠다는 주인공을 데리고 단행본 5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건 보통 필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독자들을 위한 재미까지 부여한다? 이게 가능한 게 좌백의 저력이다.


아내 병 수발을 위해 천하제일고수가 된 남자

 

주인공 왕필(본명은 양현)은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사부에게 팔려간다. 괴팍하지만 천하제일고수였던 사부는 딸을 부탁하며 왕필에게 천하제일무공을 전수해준다. 왕필과 사부의 딸은 사랑하여 부부가 되지만 아내가 병에 걸린다. 왕필은 아내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받고 절정고수들 8명을 청부살해한다. 비적유성탄(飛賊流星彈).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며 돌멩이로 절정고수를 죽인다 해서 왕필에게 붙은 별호다. 천만금을 들여 애썼지만 왕필의 아내는 결국 죽는다. 왕필은 방랑하던 중 항주에 도착하여 포두가 되어 조용히 살고자 하지만 온갖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 천하제일고수도 인생을 마음대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당대 서양 문화에 대한 소개

 

작가는 특이하게도 이야기 전반에 걸쳐 당대의 서양 문물을 소개한다. ‘로저’라는 영국인 항해사를 통해 권투 기술과 서양 검술도 선보인다. 안남 지방에서는 시비가 붙은 포르투갈 선원들과 화승총과 암기술의 대결을 그려낸다. 결과는 내공을 이용해서 총알을 암기처럼 사용한 왕필의 압도적인 승리. 작가가 이러한 설정을 그려내기 위해 관련 책자들을 연구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러한 시도가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했어도 무협지의 범주를 뛰어넘는 시도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결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자신을 잡으려는 백도인들의 추적마저 뿌리쳐야 하기에 왕필은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고사 끝에 참여한 강중행의 서양 선박 탈취 작전은 강중행의 심복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고생만 한다. 살인 청부자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순간 왕필은 정체를 밝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얻은 것도, 목표도 없는 왕필은 신물나게 고생만 안겨줬던 바다로 나가겠다고 결심한다. 강중행, 로저, 공손혜수가 왕필의 뒤를 따른다. 비적유성탄은 이렇게 끝나는데 독자들 입장에서는 아쉽기만 하다.


끝맺었으면 좋았을 설정의 잔재들

 

왕필이라는 주인공의 설정이 ‘게으르고 목표도 없는데다 조용히 숨어 살고 싶은 인물’이었기에 이런 결말로 이끌었던 작가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결말 이전까지 깔아놓았던 복잡한 구성과 캐릭터들이 그대로 사장된 건 아깝기만 하다. 흑호를 비롯한 흑룡방, 내각대학사 악중산, 남궁세가와 남궁현도로 대표되는 세가연맹, 용소현과 장강수로채와의 인연을 그냥 묻기에는 아쉽다. 특히 왕필이 비적유성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궁현도와 남궁현아와의 인연이 밝혀지지 않은 채 끝난 건 작가의 실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것 아닌가.


단편으로 남긴 독자 서비스

 

좌백도 이러한 독자들의 하소연과 푸념을 접했던 모양이다. 후에 발간한 <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의 단편 <쿵푸 마스터>를 통해 왕필 일행의 후일담을 그려낸다. 일종의 독자 서비스인 셈이다. 짧지만 갈증을 채우기엔 충분하다.

왕필 일행은 안남에 도착해서 제자이자 안남 총독의 아들인 응유엔 팍과 함께 포르투갈 유학길에 동행한다. 응유엔 팍이 포르투갈 귀족과 황태자와 함께 검술과 그밖의 학습을 하는 동안 왕필 일행은 유럽 투어에 나선다. 루마니아 드라큘 백작 성에 도착한 왕필은 성 곳곳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감지하고 드라큘 백작과 일행이 인간이 아님을 파악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대결. 드라큘 백작은 열세를 깨닫고 박쥐로 변해서 도망치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비적유성탄이야말로 박쥐에게 천적이었던 걸 몰랐으니. <비적유성탄>을 읽고나서 아쉬웠던 독자라면 마지막 1%의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필독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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