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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들’에 대한 철학과 출신 무협작가의 질문, <야광충>

by 마인드 오프너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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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살 수 있는 남자. 야광충과 사부의 대결을 그린다.

 

 

저자 좌백

출판사 뫼

발간 : 1996년

완결 : 1부 3권 2부 3권 총 6권


무협에도 철학이 필요한 이유

 

소설을 쓰는데 철학이 필요할까? 답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닌 경우는 킬링타임용으로 그 시간만 즐길 수 있는 목적으로 쓰는 소설을 쓰는 경우에 해당한다. 사실 대부분의 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작가는 욕심이 많다. 본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작품이 한 번 읽고 버려지는 걸 원하는 작가는 없다. 그렇다면 ‘시간보내기’ 기능에만 만족하면 안 된다. 플러스 알파 기능을 소설에 담아야 한다. 좋은 방법은 그 작품의 존재감을 유일무이하게 만들거나 완독 후에도 계속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는 거다. <태백산맥>이나 <토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여운을 음미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거다. 철학적인 질문은 이때 대단히 유용하다.


가방끈이 길면 유용하다

 

구무협과 신무협 작가작가들은 대부분 가방끈이 길다. 한자와 고사성어, 역사에 밝아야 하는 장르 특성 때문일 것이다. 서효원은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 야설록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 용대운은 서울시립대 건축과, 좌백은 숭실대 철학과 출신이다.

 

좌백의 경우 철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작품 저변에 인생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많이 담는다. ‘복수’와 ‘인연’, ‘인생을 걸만한 목표’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주제다, <야광충>에서는 주인공 야광충과 그의 사부를 통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다. 완독 후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들을 복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광충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제자 VS 최고를 지향하는 스승

 

서로 극적으로 대조가 되는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스승은 예충(로부 옹고트)다. 천산파 장로로서 끝없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무공과 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일은 완벽주의를 기하며 불사옥령체가 되어 고금최강인이 되는 게 목표다.

 

예충은 제자 야광충을 어린 시절에 거두었다. 온정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목표를 위해 제조했다고 보는 게 맞다. 현음지맥의 몸을 가진 탓에 천재적인 지성을 가졌지만 햇빛을 볼 수 없다. 별호가 야광충인 이유다. 다른 사람의 피를 빨면 고통을 참으며 낮에도 다닐 수 있으나 하지 않는다.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부족한 상황에서도 과감히 지를 줄 안다. 이처럼 서로 대조적인 스승과 제자가 반목하며 대결하는 이야기가 바로 <야광충>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천하제일인

 

주인공인 야광충 못지 않게 작품을 지배하는 인물이 로부 옹고트다. 모든 사건은 예충의 기획에서 시작된다. 예충은 다양한 신분과 권력을 이용하여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한다. 1. 몽고 일족을 부추겨 중원을 다시 지배하는 것, 2. 불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의 생각과 계획, 실행은 그 자신밖에 알지 못한다. 부하들에게도 그의 전체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리에 실행에 옮긴 그의 궤계는 허무하게 실패로 끝난다. 야광충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니었기에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이다.


지피지기를 하지 못한 천하제일인

 

로부 옹고트는 사람들이 이기심과 욕망으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다. 로부 옹고트가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고 해도 결국 자신의 경험과 생각 안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가 ‘이타심’이나 ‘안분자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계획은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야광충의 행동이 그의 계략 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자만심과 자기 과신이야말로 천하제일인조차 넘을 수 없었던 최강의 적이었다. 야광충은 모든 면에서 로부 옹고트보다 떨어졌지만 사부보다 사부를 더 잘 알았기에 마지막 대결에서 웃을 수 있었다.


무림인들이 전초전을 치룬 국가 간 대결

 

로부 옹고트의 야심은 무공 최강 고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천산파의 장로로서 몽고군을 움직여 중원을 정벌하는 게 최종목표였기에 필연적으로 명나라의 새로운 폭군 영락제와의 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로부 옹고트는 몽고족을 통일한 벤야시리의 곁에 제자인 천산파 장문인 아루타이를 두고 중원을 위협한다. 명나라 동창의 부영반 등평은 신분을 감추고 로부 옹고트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본격적인 대결에 대비한다. 로부 옹고트가 야광충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몽고와 명의 대결은 영락제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실제 역사에서 영락제는 즉위 후 북방 정벌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며 강력한 명을 표방했다.


<구대문파>로 이어지는 세계관 공유

 

야광충의 병기는 일곱가지다. 이를 연형칠장이라고 한다. 묵린수, 주작비, 유리환검, 귀왕인, 염왕자, 척혈구절대, 인명권은 야광충의 상징이다. 야광충의 연형칠장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구대문파>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자객 천인혈이 연형칠장 일부를 사용한다. 이 작품에는 공령, 공심 소림쌍괴가 무림에 미친 난의 영향과 <하급무사>의 주인공 장천도 등장하며 세계관을 공유한다. 작가라면 당연히 시도하고 싶은 무림월드 아닌가. 언젠가 좌백이 펼쳐놓은 무림 월드 안에서 이들이 모여 펼치는 무협을 보고 싶다. 그러니 제발 신장을 내놓아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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