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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가였으나 한 인간으로는 위대하지 못했던 그의 일생, 영화 <아문센>

by 마인드 오프너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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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드라마

제작국 : 노르웨이, 스웨덴, 체코

상영시간 : 125분

감독 : 에스펜 잔드베르크

주연 : 캐서린 워터스턴, 크리스티안 루벡

등급 : 12세 관람가

 

 

모험과 탐험의 시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는 탐험과 모험의 시대였다. 빈약한 항해술과 인문 지식 덕분에 인류는 지구상에 미지의 영역을 많이 남겨두고 있었다. 가진 게 없지만 도전 정신과 모험심을 가진 이들은 미지의 영역을 선점하는 것으로 명성과 부를 획득하고자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소수의 모험가들은 투자자들 – 대개 왕이나 귀족 - 의 후원을 받아 기회의 땅으로 떠났다. 마젤란, 콜럼버스, 피사로 등은 원하는 결과를 얻고 태평양과 아메리카 대륙에 자신들의 족적을 영원히 남겼다. 항해길과 대륙이 발견된 이후 모험가들은 극지로 눈을 돌렸다. 북극점과 남극점은 모험가들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탐험가로서 산다는 것

 

평안한 일상을 외면하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극지 탐험에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한 사람의 삶을 예로 들어 ‘탐험가란 이러하다’고 일반화를 하긴 어렵지만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노르웨이의 대탐험가 아문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아문센>은 이러한 목적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본다. 영화에 의하면 아문센의 끝없는 탐험 욕구는 그의 부친으로부터 유래되었다. 4형제 중 특히 그와 두 살 위의 형은 죽이 잘 맞았다. 아문센을 보며 본인이 탐험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형은 동생의 탐험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아문센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했고,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뛰어난 조력자를 두었기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자존심을 건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

 

아문센은 원래 북극점을 정복하려 했다. 팀을 꾸려서 북극점 탐험을 준비하던 그와 탐험대원들에게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 아문센은 큰 실망을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남극점 정복을 은밀하게 준비한다. 탐험을 위한 배를 대여해 준 난센과 노르웨이 국왕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남극점을 간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배를 회수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문센의 마음은 급했다. 그보다 훨씬 먼저 오랫동안 남극점 정복을 준비한 영국의 로버트 팰컨 스콧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장비나 후원 면에서는 스콧이 월등했지만 아문센은 자신 있었다. 북극해 항해를 준비하면서 이누이트 족의 생활 문화를 연구하던 중 배운 지식이 있었고, 스콧이 택한 루트와 탐험 계획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만한데다 무식했던 스콧의 최후

 

아문센이 연구한 이누이트 족의 생활 문화는 남극점 정복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남극점까지 짐과 사람을 운반할 썰매를 끌기 위해서는 개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아문센은 확신했다. 극지방에 가까워질수록 불필요한 짐을 제거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잔인하지만 개들을 죽여 식용으로 사용하기로 동료들을 설득했다. 이러한 지식을 영국인들과 스콧이 있는 회의장에서 발표했지만 스콧을 비롯한 영국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스콧은 오만한데다 무식했다. 그는 아문센의 발표를 무시하고 개 대신 조랑말을 선택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조랑말은 추위에 약했다. 극점으로 다가갈수록 조랑말들이 죽어나갔다. 조랑말 대신 대원들이 썰매를 밀어야 했다. 먹을 것도 부족했다. 스콧과 대원들은 아문센이 정복한 후에야 남극점에 도착했다. 피로와 기아, 경쟁에서 졌다는 실망감이 겹쳤을까. 스콧은 돌아오는 도중 마지막 일기를 남기고 얼어 죽는다.

 


 

자연은 정복이 아니라 순응의 대상

 

아문센은 정정당당하게 남극점 정복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영국인의 시선은 차가웠다. 노르웨이에 패배한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영국인들의 치졸한 정신승리의 결과였다. 오만한 영국인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탐험 과정에서 개를 잡아먹은 아문센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다. 탐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죽은 스콧과 대원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순교자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며 추켜세웠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공적을 깎아내리는 졸렬한 영국인들을 보며 아문센은 조용히 한 마디 한다. “자연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데, 스콧은 정복(하려다 실패)했다. 자연은 순응해야 한다. 나는 그저 순응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참으로 뼈 때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탐험가’의 이미지에 가려진 양아치 본성

 

영화 <아문센>은 아문센의 탐험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인간으로서의 면모도 낱낱이 밝힌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놀랍게도 아문센은 탁월한 탐험가였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편안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았지만 그와 함께 행동한 이들의 삶은 방치함으로써 불행을 초래했다. 탐험대 대장으로서 위험에 처했을 때 부하들을 외면했다. 그와 함께 북극점 항해를 나선 부하들은 도중에 죽었다. 경제 관념도 엉망이었다. 자산 관리와 후원금 모집을 전담하는 형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내연 관계의 영국 귀부인에게 돈을 흥청망청 써댔다. 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떠났다. 사생활도 난잡했다. 영국 귀부인과 사귀는 중에도 다른 여자와 동거했다. 북극점 항해에서 교육시키겠다고 데려온 이누이트족 소녀들은 2년 만에 시베리아로 보내버렸다. 위대한 탐험가의 모습 뒤에 가려져 있던 인간 아문센의 참모습은 충격적이다.

 


 

외곬수 탐험가의 마지막

 

아문센은 남극점을 탐험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극지로 향했다. 탐험에 배를 빌려준 난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1926년에는 이탈리아의 협찬을 받아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을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사생활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책임감이나 절제를 모르던 그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영국 귀부인 키스는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형의 의견도 묻지 않고 새로 주문한 비행기 세 대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했다. 그 와중에 그와 함께 북극 횡단 비행을 했던 동료 노빌레의 탐험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문센은 뉴스를 듣고 즉시 비행기를 몰고 북극으로 날아간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답지 않은 무모한 시도였다. 결국 아문센은 도중에 연락이 끊긴다. 그를 찾아 나선 구조대는 그의 비행기 잔해만 발견했다. 죽음마저도 탐험가다운 최후라고 하겠다. 아문센이 실종된 동료를 찾아 급히 북극으로 떠난 이유는 구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서 탐험가답게 최후를 맞이할 장소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광활한 자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영화는 요란한 액션 없이 조용히 아문센의 면모와 그의 주변인물들에 집중한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이들은 아문센의 내면 세계와 그가 가고자 하는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무모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책임감이 없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두 시간 남짓 감상하노라면 ‘인간’이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능력이 전부가 아니며 항상 겸손하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곱씹게 된다.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적당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지간한 인문학 책보다 얻을 거리가 많은 영화다. 영화의 시각적인 쾌감은 아문센과 탐험대가 향하는 남극의 광활한 대지가 책임진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남극대륙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상쾌해진다. 아문센의 탐험대가 남극점을 정복했다고 환호하는 순간 카메라는 재빨리 줌아웃을 한다. 그 결과 아문센 일행은 화면에서 지워지고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그림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장면을 통해 감독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문센은 남극을 정복했다고 했지만, 그건 그와 우리 인간들의 착각’이다. 자연은 정복당한 적이 없다. 그저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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