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범죄, 액션 |
그는 범죄/액션만 판다
홍원찬이 누구더라? 이름이 낯설다. 그의 프로필을 찾아본다.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탓이다. 놀랍게도 이번 작품이 장편영화로는 두 번째다. 그런데 노련하고 세심하다. 프로필을 더 찾아본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리한 사람이다. 감독 입봉 이전부터 줄곧 액션, 범죄, 스릴러 영화 제작에 각색으로 참여했다. 참여한 작품들이 모두 흥행과 비평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추격자>, <작전>, <황해> 등이다. 오래 전부터 연출을 겨냥하고 각색과 각본을 맡아왔다는 뜻이다. 각색과 각본은 연출과 잇닿아 있다. 겨우 두 번째 작품에서 능란한 연출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각색과 각본을 하며 연출의 기본과 감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영리한 점은 또 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잘 알고 있던 범죄/액션 장르로 안정적인 출발을 꾀했다. 첫 번째 장편 <오피스>는 이 작품을 위한 시험대였다. 출연진도 B급이다. 자신감을 얻었다. 두 번째 영화는 출연진부터 A급이다.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확실한 카드를 선택했다. 인지도 부족한 감독의 공백을 확실히 메꿨다.
의도적인 스토리 단절로 호기심 유발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사전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초반이 가장 힘들다. 제목도 뭘 의미하는지 오리무중이다. 이야기의 흐름도 단절되어 있다. 도입부부터 주인공 인남(황정민)은 야쿠자 두목을 암살한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곧 업계를 떠난단다. 이야기는 뒤로 가는데 관객의 생각은 앞쪽에 머문다. 궁금증 때문이다. 인남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나타나면서 서서히 궁금증이 풀린다. 불친절하지만 영리하다. 단절된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할 것을 예상했다. 야쿠자 두목 암살, 과거를 알 수 없는 암살자, 그를 둘러싼 정체 모를 인물들, 딸의 실종....자극적인 소재의 종합선물 세트다. 감독이 인남의 과거를 뒤로 돌린 것은 현명하다. 처음부터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이야기는 탄력을 잃고 늘어졌을 것이다. 징검다리식의 과감한 전개로 관객이 물음표를 찍으며 따라오게 만든 것은 탁월한 전략이었다.
익숙한 구성을 절묘하게 비튼 스타일
이 영화는 새로운 발상이나 이야기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납치된 딸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나 아저씨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저씨>를 연상할 것이다. 엘리베이터 씬은 <신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오마주일 수도 있고 벤치마킹일 수도 있다. 감독은 뼈대의 유사성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섀시는 공유해도 껍데기 디자인 여하에 따라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플랫폼 공유 방식이다. 관객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방식을 선로로 놓고 그 위를 촬영과 조명, 음악 등으로 새롭게 장식한 연출이 간다. 참으로 경제적인 생산 방식 아닌가.
인상적인 촬영과 캐릭터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감각적인 액션 씬이다. 주인공인 인남(황정민)과 인남을 추격하는 레이(이정재)가 펼치는 액션은 대조적이다. 전자는 정적이고 후자는 동적이다. 전자는 효율, 후자는 공포를 추구한다. 스케일보다 섬세함에 신경을 썼다. 액션을 근접전으로 꾸민 것은 예산으로 보나 효율성으로 보나 영리한 선택이다. 다만 근접전은 촬영을 비롯한 조명, 음향 스탭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행히 모든 스탭의 역량이 기대 이상이었다.
황정민이나 이정재는 인정하기 싫을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박정민이다. 화끈한 역할 변신 덕분이다. 그가 쌓아온 캐릭터 상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모험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박정민이다. 팔색조처럼 천연덕스럽게 캐릭터에 스며들었다. 이정재도 선전했다. 이정재 연기의 한계를 대사를 줄임으로써 오히려 플러스로 만들었다. 마치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한우물을 파며 준비한 감독의 길
최근의 자기계발서를 보면 한우물을 파는 건 어리석다고 한다. 어디서 물이 나올지 모르니 이곳저곳 많이 파봐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홍원찬은 영화계 입문 이후 한우물만 팠다. 범죄/스릴러/액션 장르에 올인했다.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섣불리 연출에 도전하지 않았다. 잘 하는 감독들의 옆에서 각색으로 만족했다. 지켜보고 배웠다. 수없이 복기를 했을 것이다. 연출, 스탭 운영, 대본, 배우 지도 등....감독의 일이란 끝이 없다. 그의 행로는 영화 속에서 오마주한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을 닮았다. 박훈정도 영화계 입문 이후 범죄/드라마 장르만 걸어왔다. 아마도 홍원찬은 박훈정을 롤모델로 삼았을지 모를 일이다. 롤모델이 되는 선배가 있는 건 행운이다. 홍원찬의 예에서 두 가지만 배워보자. 1. 세상에 준비 없이 우연이 일어나는 성공은 없다. 그러니 목표를 먼저 세우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2. 일단 한우물만 파라. 잘 하는 일을 하라.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건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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