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면 여운이 진하게 남는 영드 걸작
보고 나면 즉시 기억에서 삭제되는 휘발성 드라마도 있지만 보고 난 다음 기억에 오래 남고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드라마가 있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리즈는 후자에 속한다. 제목 블랙미러는 스마트폰, TV등의 전자기기를 껐을 때 보는 검은 화면을 의미한다.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우리나라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며 미디어와 정보기술이 윤리관이나 가치관을 앞서 나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사례로 드는 사건들이나 반전이 꽤나 충격적이라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인상적으로 각인된다.
일상의 모든 것이 메리트로 지불되는 디스토피아
근미래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사면이 디스플레이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서 살면서 헬스 사이클을 밟으며 사이버 머니 '메리트'를 벌어 생활한다. 비만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할 경우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청소부 등 잡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똑같이 자전거 페달만 밟고 자판기 음식을 먹는 이 세상에서는 지루함을 견디게 만드는 현란하고 자극적인 광고와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이곳을 벗어날 유일한 기회는 1,500만 메리트를 모아 오디션 프로그램 '핫 샷'에 나가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삶을 뛰어넘고 싶었던 주인공
주인공 빙(대니얼 칼루야)은 형이 남긴 1,500만 메리트가 있지만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게임과 자전거 페달 돌리기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다. 어느날 우연히 화장실에서 애비(제시카 브라운 핀들리)의 노래를 듣게 된 빙은 출전권을 결제해줄 테니 핫 샷에 나가보라며 권유한다.
빙의 도움으로 핫 샷에 출전한 애비는 노래를 불러 오디션을 통과하지만 '가수는 차고 넘치니 포르노 배우가 되라’는 심사위원들의 꼬임에 넘어가 가수를 포기하고 포르노 배우로 데뷔한다. 이 장면을 본 빙은 분노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높디 높은 시스템의 벽
애비가 출연하는 포르노 광고를 보고 분노한 빙은 그 날부터 메리트 모으기에 들어간다. 1,500만 메리트를 모은 빙은 핫샷에 출연하여 춤을 추다가 숨겨온 유리 파편을 꺼내 목에 겨누고 사회와 세계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킨다.
놀랍게도 빙의 행동을 본 심사위원들은 “좋은 퍼포먼스였다”는 칭찬과 함께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빙은 그 대가로 한층 넓고 고급스러운 방으로 이사하고 컵에 담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바깥에 펼쳐진 숲의 풍경을 바라보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뛰어넘을 것인가, 안주할 것인가
빙은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했지만 결국 시스템에 굴종하는 길을 택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시스템은 개인이 뛰어넘기엔 너무나도 힘겨운 상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우리 일상에서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해마다 산업 현장에서 사업주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도 제도와 법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음주운전, 무고, 학폭 등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가해자들을 솜방망이 처벌하는 사법 비리와 변호 카르텔은 새로운 피해자를 만든다. 피해자가 절규해도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상 세계와 다르지 않다.
남들처럼 숨죽이고 변하지 않는 세상을 욕하며 살 것인가. 세상에서 조금 더 나은 지위로 올라가 피해를 가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뒤바꾸는 일에 동참할 것인가. 생각은 많되 선택지는 거의 하나로 귀결되기에 더욱 암담한 현실이다.
★★★☆
압도적!
좋은데?
시도만 좋다
그냥저냥
시간이 아까워
장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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