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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신무협 시대의 전성기를 열었던 좌백의 대표작, [대도오]

by 마인드 오프너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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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무협에 반기를 들었던 신무협 작가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구무협은 짧은 전성기 끝에 퇴락으로 접어들었다. 자기복제나 다름없는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빌어 쓴 대리작가들의 형편없는 작품들이 범람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무협작가들은 선배들의 구성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서 새로운 무협을 쓰고자 했다. 이들을 신무협 작가라고 한다. 신무협 작가들의 본거지는 야설록이 사장으로 있었던 뫼 출판사였다. 신무협 시대의 대표작가인 용대운이 이곳의 실장으로 재직했고, 좌백, 풍종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무협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소재와 구성이 남달랐던 좌백의 작품들

 

좌백은 숭실대 철학과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의 무협은 인물들이 살아 있다. 그의 아내인 진산도 무협작가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서 밀고 끌고 했는지는 몰라도 이들 부부의 작품은 신무협 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좌백의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대도오>와 <혈기린외전>이다. 두 작품 중 대중성과 재미를 따진다면 후자를 꼽겠다. <대도오>는 좌백의 첫 작품이라는 의미가 크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구무협 작품들과는 아예 다른 길을 걷겠다는 좌백의 의지가 읽힐 정도로 구성이 판이하다.


조장이 된 낭인, 대도오

 

주인공 대도오는 낭인이다. 낭인이되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는 쉽게 잊지 못한다. 목숨을 구해준 무사의 소개로 대도오는 하루아침에 철기맹 흑기당 제오향 풍자조 조장이 된다. 당시 철기맹은 구륜교와 감숙 지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에 참가한 이들, 그리고 이들의 쟁투를 지켜보던 중원 인사들, 심지어 대도오 자신도 이 싸움이 그토록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좌백은 낭인무사에서 문파의 일원이 된 대도오의 발길을 따라 인생의 의미, 복수, 개인의 성장, 충성과 배신 등 다양한 가치들을 조명한다.


무협 주인공의 전형성에서 탈피하다

 

대도오는 그 이전까지 무협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공이 약하다. 내공도 변변치 않아서 상승무공을 익힐 수 없다. 구륜교의 전대 교주를 만나 팔극진기를 받기는 하지만 이미 나이가 많기에 가진 무공을 조금 더 높이는 정도다. 제대로 된 사승도 없고 기연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전적이다. 기세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대도오가 상대하는 적들이 무공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도 승리한다는 결말에 약간의 의문이 들면서도 이내 수긍하는 이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무모하지는 않다.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철저히 실리를 취한다. 조직 내에서 솔선수범해서 부하들의 신망을 얻는다. 윗사람들은 대도오를 싫어하지만 아랫사람들은 믿고 따른다.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들

 

대도오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소개된다. 대도오가 이끄는 흑풍조에만 노대, 매봉옥, 안소, 나중에 합류하는 철기맹주 운기준, 새외일인자 혁련소천, 구륜맹주의 딸 독고청청이 있는데 이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노대는 오래 전의 복수를, 매봉옥은 가문에서의 속박을 이유로 철기맹에서 일하는데 이들의 사연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밝혀진다. 이밖에도 사문을 배신하고 야망을 이루려는 철기맹의 서문벽이나 그의 부하들, 남의 일에 간섭하면서 이권을 취하려는 종남파, 종남파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는 구대문파 등이 나서면서 플롯을 심화하며 이야기의 흥미를 더한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시기적절하게 등장과 소개 타이밍과 분량을 조절하고 이야기의 맥을 끊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탁월한 작품성

 

좌백 무협은 오래 전에 이미 일독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한 번 그의 작품들을 일주 중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황당하고 수준 이하의 판타지 무협이 난무하는 지금 보니 그의 작품이 얼마나, 그리고 왜 재미있었는지 알게 된다. 무협 장르에 속하면서도 독자들이 요청하는 소설을 쓰려면 무협의 기본 틀을 먼저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변주를 시도하는 게 맞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 법이다. 차별화를 한다고 하지만 정작 뜯어보면 다른 필자나 일본 라노벨에서 이미 오래 전에 써먹은 구성이거나 개연성조차 갖추지 않은 작품으로는 무협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독자들을 소환하기 어렵다. 제 2, 제 3의 <대도오>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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