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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경영

1,500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성공한 영화배우의 성공 비결

by 마인드 오프너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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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이다. 마라톤 경주를 완주하려면 단거리 경주와는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전략은 단기적인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다. ‘빠른 결과를 원하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여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1500+ 실패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그 실패의 벽을 뛰어넘은 젊은이를 소개한다.

 

 

치명적인 장애를 가졌던 무명배우의 꿈

 

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병원이 아닌 공공 의료시설에서 그를 낳았다. 이때 담당의가 겸자로 아기 머리를 집어 끌어내는 겸자 분만을 하다가 아기 왼쪽 눈밑의 신경 일부를 손상시켰다. 시간이 지난 후 아기의 왼쪽 눈 밑이 쳐진 것을 알아차린 부모가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교정을 하기에는 때가 늦은 상태였다. 결국 그는 평생 동안 언어장애와 안면신경마비(구안괘사)를 떠안고 살아야 했다.

아기는 자라서 체육특기생으로 스위스의 로잔 아메리칸 스쿨을 졸업하고 마이애미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는 연기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학을 중퇴한 후 할리우드를 전전했다. 안면신경장애와 언어장애로 인해 엑스트라가 고작인 고달픈 배우 생활이었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엑스트라와 병행하여 나이트 클럽 문지기나 소프트 포르노 배우를 해야 했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저축을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생애 첫 주연을 하게 됐지만 개런티로 받은 건 티셔츠 25벌뿐이었다.

 

 

현실을 인정한 전략 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배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고픈 배를 안고 그는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500곳의 영화사를 다녔는데도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 선에서 오디션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젊은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1,500번째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접근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계속 지금까지의 전략을 고수한다면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게 확실했다. 그는 전략을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때 습작으로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중에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경기를 보고, 15라운드까지 버틴 웨프너의 투혼에 영감을 얻어 작성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는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힘겹게 주인을 찾은 시나리오

 

다행히도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그가 쓴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주목한 영화사들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무명배우이면서도 그는 제작자들에게 대담한 조건을 걸었다. 대본을 영화화할 경우 감독과 주연을 자신이 맡겠다고 한 것이다. 그가 제시한 조건을 제작사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흥행을 위해서 유명 배우를 기용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나리오는 반 년 동안이나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떠돌게 된다. 이때 구원자로 등장한 곳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였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는 젊은이의 의견을 반만 받아들였다. 주연배우는 하되, 감독은 제작사가 기용한 인물로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낙점된 감독이 197729회 미국 감독 조합상 감독상(영화부문)을 수상한 존 G. 아빌드센이었다.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한 데뷔작

 

영화 제작은 속전속결로 제작되었다. 촬영을 시작한 지 28일만에 제작이 끝날 정도였다. 영화는 1976년 개봉됐다. 공전절후의 히트를 쳤다. 영화의 흥행 성공 요인은 백인 노동자계층에 관한 애정 어린 세부 묘사였다. 실패한 주인공의 인생 역전 이야기는 패자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합당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당시 미국인들에게 명예와 용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영화는 제작비의 50배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내며 그 해 최고의 영화로 떠올랐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편집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이자 대본을 쓴 젊은이는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비록 수상을 하지는 못 했지만 젊은이는 이 작품 하나로 그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젊은이의 인생 역전 계기가 된 영화는 <록키>였다. 시나리오를 쓴 젊은이는 실베스타 스탤론이었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록키>의 성공에 힘입어 월남전 참전 용사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고찰을 담은 영화 <람보>에 공동 각본 및 주연으로 참여한다. <람보>1982년에 개봉하여 흥행에 대성공한다. 배우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졌지만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지 않고 끝까지 버틴 실베스타 스탤론이 할리우드의 간판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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