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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킬링타임용 상업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싶었던 걸까? 뤽 베송의 영화와는 결이 달랐던 <도그맨(Dogman)>

by 마인드 오프너 202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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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답지 않은 영화

 

뤽 베송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그가 관련된 흥행작은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프리다이빙을 다룬 <그랑블루, 1988>, 여자 킬러를 다룬 <니키타, 1990>과 나탈리 포트만을 스타로 만들어준 <레옹, 1994>의 그의 연출작이다. 연출뿐 아니라 각본으로도 <택시>, <13구역> 등의 다양한 흥행작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작품으로 판단하자면 메시지가 담긴 예술성 강한 영화보다는 대중적이고 흥행성이 강한 영화를 연출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에 개봉한 <도그맨>은 다르다. 흥행이 안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고독한 남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늙으니 심경에 변화가 온 것일까. 어쨌거나 의도는 성공했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으니 말이다.

다방면에서 흥행작을 연출하고 각본을 쓴 뤽 베송.


 

장르 : 드라마, 스릴러

제작국 : 프랑스, 미국

상영시간 : 115분

개봉 : 2024.01.24.

감독 : 뤽 베송

주연 : 케일럽 랜드리 존스

등급 : 15세 이상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1인극이나 다름없었다.

 


기구한 운명을 겪었던 반려견의 제왕

 

뉴저지의 도심에서 수백 마리의 개와 함께 살던 한 남자가 체포된다. 남자는 총상을 입은 채 핑크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복장도착자(Transvestite)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더글러스 먼로. 체포된 먼로가 정신과 의사인 에블린에게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털어놓는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학대당하며 기구한 삶을 살았던 먼로는 죽음 직전 개들과의 교감으로 살아남아 제 2의 인생을 살수 있었다. 영화 속의 인물이지만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먼로의 삶이 펼쳐지고 살아남기 위해 저질렀던 범죄들이 폭로되면서 관객들은 결말이 궁금해진다.

복식도착자의 모습으로 에블린을 기다렸던 더글라스 먼로.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소름 끼치는 연기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더글러스 먼로를 연기한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1인극이나 다름없다. 에블린과의 인터뷰는 뼈대다. 그 위에 먼로의 인생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살을 붙인다. 2021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일럽의 약력은 캐스팅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먼로를 연기하는 케일럽의 연기력은 소름 끼치는 수준이다. 가족들에게 학대받고, 총을 맞고 불구가 되고, 사랑했던 여인에게 버림받고(사실은 착각이었지만) 개들과 살 수밖에 없었던 고독하고 처절한 남자의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케일럽은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변화하는 먼로의 내면을 압도적이면서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표출한다.

로맨틱한 관계를 꿈꾸던 샐마가 사실은 자신과 생각이 달랐다는 사실을 확인한 먼로는 절망한다.


인터뷰 대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뤽 베송은 이야기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정신과 의사 에블린과 먼로의 인터뷰를 기본 뼈대로 삼았다. 인터뷰가 선행되고 먼로의 과거 시절이 뒤따르는 방식은 관객들의 신속한 이해를 돕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반면 똑같은 방식의 반복으로 관객들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둘의 인터뷰 중에 결정적인 반전이나 상황 전환이 생기지도 않기에 더욱 그렇다. 뤽 베송의 메시지는 결말에서 에블린과 그녀의 아이를 통해 발현되기는 하지만 그 장면 하나를 위해 극의 흐름 전체를 희생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아 보인다. 뤽 베송다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두 사람의 인터뷰는 간단명료하게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지루함을 유발한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

 

극중 주인공인 먼로의 성장과 삶을 보면서 고독하게 자란 인간이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했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 친구들에게 당시로서는 배신에 가까운 경험을 당해보았기에 샐마에게 의지했던 먼로가 통렬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겠으나 먼로처럼 기구한 삶을 살거나 홀로 자란 이들은 인간관계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된다. 설사 관계를 맺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샐마와의 재회 후 그녀와의 관계가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먼로가 울부짖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동물보호소에서 쫓겨난 후 살기 위해 무대에 선 먼로. 그의 일생 중 유일하게 행복한 시절이다.


개와의 피상적인 관계 묘사는 아쉬워

 

이 작품에서 먼로 못지 않은 배우는 수십 마리에 달하는 개들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개들과 함께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연출하느라 어떤 일을 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이 영화를 좀더 예술성이 강하거나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기고자 했다면 개들과 먼로의 관계 설정에 주목해야 했다. 먼로와 개들의 관계가 일상적인 주인과 반려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범죄 도구로 사용되는 범주에 그친 건 못내 아쉽다. 특히 먼로가 애착을 갖고 소통하려 하는 개들이 눈에 띄지 않은 점은 감독의 실수로 보인다. 적어도 개들을 이끌며 먼로의 수족이 되는 대장 격의 개 한두 마리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양한 개들에게 일일이 화면을 할당하다 보니 개들과의 관계가 평면적으로 남고 말았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기나긴 인터뷰가 끝나고 에블린은 집으로 돌아가고 먼로는 개를 이용해서 감옥을 탈출한다. 먼로는 보조기구를 떼고 옷을 단정히 입은 후 두 발로 서고자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가족에게 학대받고 사회에서 고립된 후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했지만 개와 먼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에블린이 먼로와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자신의 아이를 소중히 안아주는 장면은 먼로의 현실과 대립 구도를 이룬다. 에블린의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 사회의 지원과 사랑 덕분이기 때문이다. 근거 희박한 해피엔딩 대신 먼로의 삶이 제한적이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새드 엔딩으로 마무리한 감독의 선택은 설득력이 있다.

 

혼자 서고자 했지만 혼자 설수 없었던 먼로와 에블린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커갈 아이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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