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문화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와 액션 중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면 생기는 희극, <황야>

by 마인드 오프너 2024. 1. 30.
반응형

사냥꾼이 아니라 싸움꾼이었다.

 

장르 : 드라마

제작 : 한국

상영시간 : 107분

방영 : 2024.01.26

감독 : 허명행

주연 : 마동석, 이희준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범죄도시>?

 

1월 26일 넷플릭스에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황야>는 대지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내진 설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데다 넣어야 할 철근마저 빼고 공사하는 한국 건물이라면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올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공감한 장면이다.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병헌이 주연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비슷하지만 실제 이야기 전개로 보면 배경만 달라진 <범죄도시>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공감했던 대지진 장면.


남산이 아닌, 마석도로 다가오는 캐릭터

 

대지진이 발생한 후 몇 년이 지난 상황. 남산(마동석)은 동물을 사냥해서 남은 고기를 다른 사람과 물물교환으로 바꾸며 살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10대 소녀 수나(노정의)와는 친하게지내는 사이다. 어느날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수나와 할머니를 더 좋은 시설에서 살게 해준다며 데려간다(이걸 곧이곧대로 믿어?). 그들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게 된 남산과 최지안(이준영)은 수나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인 아파트를 습격한다. 이 과정에서 거리의 양아치들과 괴물로 변한 군인들을 상대하는 남산의 모습 뒤에는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석도가 시종일관 살아 있다. 행동과 말투, 싸움, 스타일이 똑같은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다른 사람으로 봐주길 바라는 게 무리다.

남산은 안 보이고 마석도만 보인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극의 전개

 

남산이 사냥꾼으로 나온다고 해서 대지진 후 유전자 변이로 새롭게 나타난 괴물들과의 대결을 그리는 드라마로 예상했다. <범죄도시>에서 익히 봤던 마석도의 활약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예 그렇게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적어도 새로운 이야기나 예상 외의 괴물을 기대할 수 있는 재미라도 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에서는 의외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예상한 이야기를 뱉어낸다. 결말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신인류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진 의사 양기수(이희준) 박사의 말로는 초라하기만 하다. 도대체 무슨 깡과 자신감으로 신인류를 창조한다는 건지. 사이비종교 교주나 다름없다.

양기수 박사의 연구는 인류 구원이 아니라 딸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폐허가 된 아파트에서 신인류 창조라니

 

구멍이 너무 많다.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연구라면 필요한 재원이나 기기 등을 감안해도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이를 반영한다. 지진으로 모든 연구 자료와 시설이 망가진 마당에 박사 혼자 무슨 연구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 불가다. 인명 구출 작전 임무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이 별다른 거부감도 보이지 않은 채 양박사와 한 편이 되는 장면도 납득할 수 없다. 군인들은 좋게 말하면 충성심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편향적이기에 설득이 쉽게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이 머리를 쓰지 않는다. 폐허가 된 시대에 아무 조건도 없이 맑은 물과 좋은 주거환경을 제공한다는 말을 덥석 받아들인다. 남산 일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살아있는 좀비나 다름없다. 대부분 등장인물이 좀비인 영화가 재미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구출 명령을 받고 왔다가 맥락 없이 양기수 박사의 하수인이 되는 특수부대원들. 특수(?)하긴 했다.


무술 감독과 영화 감독은 다르다

 

남산이라는 캐릭터를 마석도가 압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허명행 감독은 정두홍 무술감독의 제자이자 <범죄도시>의 액션을 연출한 무술감독이기 때문이다. 총이나 칼을 휘두른다는 점은 상이하나 남산의 모든 행동거지와 말투, 심지어 톤앤무드까지 <범죄도시>를 그대로 보는 느낌이다. 액션 연출을 하면 영화 연출도 잘할 것이라고 쉽게 본 걸까. 그렇게 보았다면 대착각이다. 액션은 영화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의 일부일 뿐이다. 이야기의 전개와 흐름, 캐릭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점이 극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울러 비슷하게 소모되는 마동석의 캐릭터 역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남산이 얼마나 강한 인물인지 보여주기 위해 소모되는 캐릭터들. <범죄도시>에서 이미 마이 묵었다 아이가.


같은 소재, 다른 결과

 

서두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 만듦새의 차이는 현격하다. <황야>가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인기를 얻은 마석도 캐릭터의 힘을 빌려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에 집착하고 있는데 비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 덮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 군상들의 집착과 생존경쟁, 욕망과 본능을 통렬하게 그려낸다. 당연히 이병헌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연기에 영화 완성도의 많은 부분을 기댈 수밖에 없는데 배우들의 좋은 연기로 인상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도 무엇을 중점으로 삼느냐와 감독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가 현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우리 아파트만 제외하고'라는 카피도 주제와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전에 기획한 결과다.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