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협 전성시대를 이끈 용사들
내가 좋아하는 무협작가들이 있다. 국내 무협의 3기, 즉 김광주로 대표되는 1세대, 사마달, 서효원, 야설록 등으로 대표되는 대본소 무협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무협 세대의 주역들이다. 용대운, 좌백, 이재일, 풍종호, 한백림 등이 쓴 무협은 확실히 달랐다. 속도감과 글빨, 구성력, 미스터리 등 기존 무협에서 맛볼 수 없는 장르적 쾌감이 존재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그들은 지금 한동안 주름잡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용대운이 간간히 국내 최장 무협인 <군림천하> 연재 소식을 알려올 뿐이다. 절필을 선언했던 좌백은 ‘곳간에 쌀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여전히 두문불출이다. 이재일도 <묘왕동주>, <쟁선계>이후 잠잠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알아보니 카카오에 <서문반점>을 연재 중이라 한다. 그래도 계속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유일하게 끝을 보지 못했던 <경혼기> 시리즈
풍종호의 대표작품은 단연 <경혼기> 3부작일 것이다. 1부 <지존록(至尊錄)>, 2부 <분뢰전(奔雷傳)>, 3부 <영겁가(永劫歌)>로 구성된다. 2부인 <분뢰전(奔雷傳)> 중 내용을 발췌한 <경혼기>가 먼저 출간되었고, 그 후 1부 <지존록(至尊錄)>이 발간되었다. <경혼기>를 읽고 한참이나 경탄을 금치 못하던 기억이 새롭다. <지존록(至尊錄)>은 한참 흥미롭게 읽다가 연재가 중단되었다. 언제 연재가 재개될지 몰랐기에 포기하고 잊고 있었다. 얼마 전 <지존록(至尊錄)>이 완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다시 보니 보이는 단점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완결은 사실인 듯 하다. 웹소설 형태로 연재를 한 모양새다. 요새 무협소설 출판 시장이 말이 아니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작품 연재란에 달린 댓글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그동안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년 사이 독자들의 기호가 바뀐 것일까. 작가의 문체가 달라진 것일까. 완결작을 읽기 전 예전 글을 다시 읽었다. 오래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보인다. 치밀한 구성은 돋보이지만 설정이 너무 길고 장황하다. 절대자들이 왜 이리 많고 최강의 무공은 왜 또 그리 많은가. 무공 인플레라 할 만하다. 나도 나이가 먹은 것인가. 무협을 보는 눈이 발전한 것인가.
숙고와 장고는 구분해주길
좋은 작품은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야 한다. ‘빨리빨리’는 콘텐츠 창조 시장에서는 절대로 피해야 할 주문이다. 하지만 장고와 숙고는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글과 구성을 위해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숙고)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연재와 절필을 번갈아가며 시간을 허비하는(장고) 일은 피해주었으면 한다. 독자들도 스트레스고, 작가에게도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뭐든지 한창 일이 잘 될 때 열심히 해야 결실이 열리는 법이다. 아끼는 작가가 오랜 장고 끝에 완결을 했다 하니 한 번 연독을 해야겠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을지라도 그래야 진정한 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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