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장르 : SF, 액션제작국 : 한국상영시간 : 98분개봉 : 2023.1.20.감독 : 연상호주연 : 김현주, 강수연 |
연출작마다 널뛰기를 하는 희한한 감독
연상호 감독은 독특하다. 연출하는 작품마다 편차가 크다. 그의 오늘을 있게 만든 대표 흥행작은 단연 <부산행, 2016>이다. 이 작품을 베이스로 <서울역>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2017년에는 <염력>을 연출했으나 대차게 말아먹었다. <부산행>의 감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졸작이었다. 2021년에는 <반도>를 내놓았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뚜껑을 열기까지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땠을까.
묵시록 배경의 SF영화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SF액션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사용한 익숙한 설정으로 도입부를 장식한다. <엘리시움, 2013>을 연상시킨다. 지구인들이 지구와 달 사이에 만든 80개의 쉘터 중 3곳이 반란을 일으켜 전쟁이 일어난다. 특수부대원 ‘윤정이’는 수많은 작전을 승리로 이끌며 용병의 전설이 되지만 작전 중 실패로 식물인간이 된다. 군수 A.I 개발 회사인 크로노이드는 윤정이의 두뇌를 복제해 궁극적인 전투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책임자로 정이의 딸 서현을 임명하는데...
초반 설정을 배반하는 중후반 전개
초반의 액션 연출은 나무랄 데가 없다. 한국 SF가 이렇게나 발전했다고? 전투 액션 연출도 좋고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들의 CG도 할리우드 못지않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이 모든 것이 A.I 개발을 위한 시뮬레이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반란을 일으킨 쉘터들과의 전쟁을 마무리해야 할 정이가 시뮬레이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다 나중에는 폐기될 운명에 처한다. 그 다음에는 엄마의 뇌를 구하기 위한 서현의 눈물 나는 신파극으로 돌변한다. 그동안 본 영화 중에 이처럼 초반과 후반의 이야기 전개가 따로 노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
윤정이의 시뮬레이션을 정당화하기 위한 초반 설정에도 허점이 많다. 80개 쉘터 중 3개 쉘터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나머지 77개 쉘터들이 이들을 진압하지 못한다는 점도 이상하다. 3개 쉘터가 그 정도로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에 있었던 것일까?
윤정이가 능력이 탁월한 군인이긴 하지만 반란 쉘터들과의 전쟁에서 승부의 무게추를 좌우할만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수많은 군인들 중에서 조금 더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날 뿐이다. 마블의 영웅들처럼 전쟁을 개인의 힘으로 끝낼 능력조차 없는 그녀를 붙잡고 예산만 축내는 것인지 명쾌한 이유가 없다. 정이 개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군 장성들이 지루해하는 건 당연하다.
닭잡는 일에 소잡는 칼을 쓰다니
고인이 된 강수연이 등장한다고 해서 호기심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강수연의 연기력을 보여줄만한 기회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을 쓴다고 하는 거다. 강수연이라는 배우의 스케일을 담기에는 서현이라는 캐릭터가 한참 모자란다. 극의 흐름을 단번에 전환시키거나, 감동을 주거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줄 기회도 주지 않는다. 강수연을 제대로 활용도 못하면서 감독은 왜 캐스팅을 한 걸까.
그나마 건진 소득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 드는 유일한 생각은 중국 판타지나 SF영화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국내 CG나 특수효과 기술은 <승리호>나 <외계인>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되었다. 중국의 CG기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는 시각적인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이다.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 없이 이미지만 그럴듯한 영화는 기초가 부실한 건축물이나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산으로 가는 영화를 보며 CG는 좋았다고 위안을 삼는 게 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진 소득이다.
차기작은 어떻게 될까
작품의 수준이 널을 뛰고 있기에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이 더 궁금해진다. 투자자들이나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쓰자니 불안하고, 안 쓰자니 다른 작품에서 <부산행>처럼 대박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시각적인 기술은 어차피 외주 제작인데다 충분히 검증되었으니 이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부터 고민을 하는 게 좋은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아닐까.
★★
반응형
'감성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근 봤던 중국 영화 중 가장 무난했던 구성과 이야기, <문맨(Moon Man)> (1) | 2023.01.29 |
---|---|
성큼 다가온 A.I의 시대, 통제 불가능한 사태에 대한 예고, <메간> (4) | 2023.01.28 |
<위처> 시리즈의 프리퀄 격인 넷플릭스 드라마, <위처 블러드 오리진> (0) | 2023.01.24 |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군상들의 갈등과 암투를 그린 전쟁 만화, <펌프킨 시저스> (0) | 2023.01.14 |
‘모든 것을 기억하는 형사’의 진실 찾기, <진실에 갇힌 남자> (0) | 2023.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