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불필요한 가오잡기와 수수께끼의 연속
몇 장면만 봐도 영화 <마녀>가 떠올랐다. 이게 우연인가? 찾아보니 감독이 <마녀>시리즈를 연출한 박훈정이다.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액션 연출, 비슷한 캐릭터들로 일관하는 드라마. <신세계> 이후로 한국 최고의 느와르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던 감독이 어쩌다가 퇴보만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4부작 드라마에서 캐릭터 소개로 70%를 잡아먹고 정상이 아닌 캐릭터들만 충만한 세계관과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개그 드립이 난무한다. 그 와중에 딱히 대립각을 세울 가치도 없는 캡슐 하나를 두고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이 난리 부르스를 춘다. 이름값이 아깝다.
장르 : 액션, SF, 스릴러, 피카레스크
제작국 : 한국
공개일 : 2024.08.14.
공개 : 디즈니+
감독 : 박훈정
주연 : 차승원, 김선호
등급 : 19세이상
슈퍼 아미 제조 샘플을 둘러싼 술래잡기
이 드라마의 상당 부분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첫 장면부터 국정원의 최국장이 괴한들에게 추격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킬러이자 금고털이 채자경은 평소 알고 지내던 연모용의 의뢰를 받아 샘플 운반용 가방을 가로챈다. 이 샘플 가방에는 중국이 개발한 슈퍼 아미 개발용 캡슐이 들어있었고 연모용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채자경을 쏘고 사라진다. 미국 정보기관을 대표하는 폴과 한국 국정원의 최국장, 국정원의 나머지 인원들은 이 캡슐을 찾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충돌한다. 인력이나 자금력에서 열세인 최국장은 은퇴한 국정원의 현장 에이스 임상을 기용하여 사태의 역전을 꾀한다. 결국 모든 세력이 한자리에서 만나지만 문제의 캡슐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엉뚱한 인물에게 돌아간다.
3부까지 캐릭터 소개로 진을 빼는 구성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수수께끼는 시청자에게 흥미와 시청 동기를 유발하지만 지나친 남발은 지루함을 유발하며 시청을 단념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향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성향이다. 본인들은 촬영과 편집을 하면서 수백 차례 보았기에 이야기를 꿰고 있지만 처음 보는 시청자들은 뭐가 뭔지 모른다는 상황을 간과한 결과다. 하지만 4부에서 3부를 캐릭터 소개에만 할애하는 건 선을 넘은 처사 아닌가. 그나마도 캐릭터의 내면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아니고 우당탕 쿵탕 액션과 수수께끼만 남발한 결과라면 말이다.
사이코와 가오잡이들로 가득한 세계관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영화에는 제대로 된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중인격의 킬러 채자경,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뽕주의자 최국장, 역시 비슷한 부류인 미국 정보기관의 폴, 기차에 카페를 차릴 비용을 챙기려 은퇴한 후에도 살인을 밥먹듯 하는 임상 등이 전부 사이코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거의 모든 인물들이 눈앞에서 총과 칼이 날아다니고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도 남의 일인 양 천하태평이다. 첫장면에서 킬러들이 쳐들어왔는데도 태연히 차를 마시고 있는 관여사의 모습은 박훈정의 영화 시계가 과거에서 멈추어버린 느낌마저 준다.
똑같은 패턴, 보여주기식의 액션 씬
채자경과 임상이 암살을 실행할 때의 모습은 매번 똑같은 패턴이다. 일단 폼을 잡고 대화를 시작한다. 당연히 적들은 반항하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는 심문을 당하거나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 연쇄살인마라면 모를까 프로페셔널 킬러들로 설정된 인물들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결국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평면적이고 어깨에 힘만 줄 줄 아는 설정인 탓이 크다. 캐릭터들의 대사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캐릭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화면 밖의 시청자들을 의식하고 보여주기 식의 액션을 늘어놓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누가 그랬다. “부연 설명이 붙을수록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후속작으로 이어지는 열린 결말?
소소한 반전으로 막을 내리는 열린 결말도 딱히 흔쾌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고작 슈머 아미 캡슐과 결합된 채자경 한 명으로 한국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을까? 연구 성과도, 연구자들도 모두 폐기된 마당인데 말이다. 임상과 채자경이 죽음을 피해 탈출하는 행위는 차기작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마녀도 있는 마당에 글쎄다. 스핀 오프 시리즈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면 좀더 명쾌한 결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혹시 마블이나 DC처럼 마녀 유니버스를 그릴 예정인 건가? 처음에 최국장의 등장과 연계한 인물들과의 대화를 보며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엄청난 큰 그림이 그려질 줄 알고 기대했던 것과는 허무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결말이라 당황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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