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되기 참 쉽네
무슨 일이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일이 더 쉬워 보이는 법인가 보다. 액션 영화의 단골 주연배우인 마크 윌버그가 첩보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제작과 동시에 주연배우도 꿰찼다. 기획도 기발하다. 건설노동자, 프로그래머 등 평범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첩보 기관이라니 전례가 없는 설정이다. 차별화 포인트도 확보했으니 흥행만 된다면야 꿩 먹고 알 먹기지만 이를 어쩐다?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상상력은 거의 대부분 허용되는 스크린 속에서도 공감이 안 된다. 총탄과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첩보 세계에서 평범한 건설노동자가 달랑 2주일 동안 훈련을 받고 첩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뻔뻔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너무 날로 먹으려 했다.
장르 : 첩보, 코미디, 스릴러
제작국 : 미국
공개일 : 2024.08.16.
상영시간 : 133분
감독 : 줄리안 파리노
주연 : 마크 윌버그
등급 : 15세 이상
첫 에피소드 보고 기대를 접었다
비밀 첩보기관(?) 유니온 소속의 록산 홀은 기밀 정보가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사라진 CIA 요원을 찾아 팀원과 함께 출동한다. 요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지만 누군가의 방해로 홀을 제외한 요원들이 모두 살해되고 디스크마저 빼앗긴다.(비밀첩보기관의 위상과 보안이 이렇다니 할말하않이다.) 디스크를 가로챈 자는 경매사에게 디스크 판매를 의뢰하고, 경매사는 인터넷을 통해 입찰을 진행한다. 디스크를 적성국가에게 넘기는 순간 은퇴한 첩보원과 현직 첩보원들 신원이 노출되어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디스크를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한 대안이 첩보 세계와는 접점이 전혀 없는 전 남자친구이자 현직 건설노동자인 마이크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신박하고 덜 떨어진 생각을 첩보원이 할 수 있는 거지?
스파이로 특채된 건설 노동자
한술 더 뜨는 건 유니온 런던지부 수장 톰 브레넌이다. 홀이 터무니없는 대안을 제시하면 가능성과 합리성을 따져서 판단해야 하는 게 그의 일인데 홀의 방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디스크를 꼭 회수해야 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보여주는 건 덤이다. 여기에 주제 파악을 못한 마이크가 제안을 수락하면서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빠져든다. 단 2주 동안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훈련을 마치고 작전에 뛰어든다. 작전 중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유니온 내부에 스파이가 암약한다는 증거들이 속속 현실화된 것이다. 유니온 요원 아테나가 현장에서 살해되고 런던지부 건물이 폭발하면서 홀과 마이크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반전에 놀랐지? ; 아니, 너무 뻔한데?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자 중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을 결말의 반전 역시 너무 뻔하다. 죽은 줄 알았던 스파이가 사실은 욕망 때문에 변절했다는 설정은 <미션 임파서블>을 비롯한 영화에서 줄기차게 봐 왔던 사례 아닌가. 그 배신자가 주인공의 연인이라는 설정 역시 기존 작들과 다르지 않다. 변절자 설정이 보다 흡인력과 매력을 가지려면 배신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발하게 표현되어 관객들이 배신 이유와 과정에 공감하고 감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스파이 짓 오래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게 없어서 각자도생하기로 했어.’라는 식이라면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고작 그 능력으로 스파이를 한다구?
디스크 회수 작전이 맥락을 잡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되던 중에 홀의 애인이자 죽은 줄 알았던 유니온 요원 패러데이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윤곽이 잡힌다. 패러데이는 첩보원 활동 중에 돈도 못 벌고 위험만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진력이 난 나머지 기밀 정보를 팔아 크게 한탕 하려 했던 것. 인생역전한 후에 서방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는 건 싫었는지 마이크와 홀을 디스크 절도범으로 오인하도록 정보를 조작하여 CIA요원들의 추적을 유도한다. 이 장면도 이야기 흐름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다. 마침내 디스크 도난 사건의 진범이 돈을 벌려는 패러데이의 욕망 때문임을 알아챈 홀은 그를 제거한 후 디스크를 회수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채는 홀을 보고 있노라니 유니온이라는 조직이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긴장되지도 않는 영화
어쩌면 감독은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긴장되지도 않는 영화’라는 평가에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코믹 스파이 스릴러물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는 감독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렵다. 장르를 짬뽕해서 영화를 만드는 건 감독의 고유권한이니 뭐라 하고 싶지 않지만 그 목적은 각 장르의 특성을 희석하려는 게 아니라 각 장르의 섞임에서 파생되는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게 당연하다. 결과적으로는 시너지는 고사하고 각 장르의 특성마저 사라진 채 특성도, 재미도 없는 작품이 나왔으니 이럴 거면 차라리 하나의 장르에 집중하는 게 더 나았지 않았을까.
감독의 야심만만한 착각
감독은 이 영화의 흥행 성적에 대해 엄청난 자신감과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결말 부분에 후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을 넣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한 오리지널(<터미네이터>, <미션 임파서블> 등)의 경우 처음부터 속편 제작을 예고하지 않는다. 오리지널의 흥행 기반 없이는 속편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오리지널의 흥행은 등한시한 채 말아먹은 영화 감독들이 김치국부터 거하게 마신다는 희한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연출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거나 관객들의 영화 보는 관점에 대한 공감 부족 때문일 것이다. 경기도 어려운데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제작비 본전 생각이 날 법한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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