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호러, 판타지 |
동명 인기 웹툰의 드라마화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스위트 홈>은 동명 인기 웹툰을 각색한 호러 크리처물이다. 무대 배경은 재개발을 앞둔 폐쇄된 아파트. 이곳에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차현수가 이사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상당한 제한이 있는데다 연출을 맡은 이응복 PD가 크리처물은 처음인지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헌데 직접 보니 생각보다 마무리를 잘 지었다.
두괄식 구성으로 시청자 이목 집중시킨 구성
십부작의 결말을 끌어와서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두괄식 구성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전개 방식이다.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어떻게 거기까지 이야기가 갔는지 호기심과 궁금증을 야기하는 방식이다. 묵시록적인 배경에 심상치 않은 군인들의 포위망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현수의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면 1화부터 시청자들을 파리지옥에 몰아넣은 셈이니 성공이라 할만하다. 뭐든지 기선 제압이 중요한 법이다.
바이오 하자드 + 레이드 + 아인 + 다잉 라이트
드라마를 보는 도중 만화 아인(亞人), 게임/애니 <바이오 하자드(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다잉 라이트> 시리즈, 인도네시아 영화 레이드가 떠올랐다. 원작 웹툰을 보지 못해서 원작도 드라마와 비슷한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사쿠라이 가몬의 만화 <아인>은 죽어도 부활하는 신인류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스위트 홈>과 흡사하다. <아인>과 <스위트 홈>의 유사점은 1. 재생이 빠르며 어지간해선 죽지 않는다. 2. 군인들과 연구진들이 부활의 신비를 캐내기 위해 감염자를 대상으로 온갖 잔혹한 실험을 거듭한다. <아인>의 타나카 코지와 <스위트 홈>의 정의명은 잔혹한 인체실험을 거치면서 인간에게 복수심을 키운다. 3. 변종들이 인류를 정복할 계획을 갖는다. <아인>의 사토와 <스위트 홈>의 정의명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바이오 하자드(레지던트 이블)>가 연상되는 이유는 괴물 디자인 때문이다.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바이오 하자드>에 나타난 괴물들과 흡사하다. 바이오 하자드의 괴물들은 엄브렐라 사의 T바이러스에 감염된 결과다. 애니메이션 <바이오 하자드 댐네이션>에 나온 타일런트나 그레이브 디거와 흡사한 모습이 <스위트홈>에서도 발견된다.
좀비 사냥 파쿠르 게임인 <다잉라이트> 시리즈는 게임 중 발견한 무기를 수리하고 다른 부품을 조합하여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다. 청계천 기술자 출신인 한두식이 여러 아이템을 조합하여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장면은 <다잉라이트> 게임 경험이 있는 게이머라면 익숙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액션 영화 <레이드>는 러닝타임 내내 아파트를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스위트 홈>과 흡사하다. <레이드>는 20명의 특수기동대가 갱단이 장악한 30층짜리 아파트를 잠입해서 보스를 체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갱단이 괴물로 변하고 특수부대가 입주민으로 변한 것 이외에는 거의 비슷하다.
나무랄 데 없는 비주얼과 음향의 하모니
로맨스 드라마를 주로 만든 감독이 호러 크리처물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응복 감독은 낡고 폐쇄된 아파트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 괴물들과 만날 지 모르는 공포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깨끗하고 넓찍한 신축 아파트였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한 덕분이다. 화면의 공포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자아내는 이등공신은 음악이다. 때로는 오케스트라와 현악기가, 때로는 합창단이 섬세하게 직조한 음향은 본격적인 비주얼이 등장하기도 전에 공포와 스릴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이응복 감독은 입주민과 감염자들과의 대결 와중에도 인간의 본성과 행복에 대한 고찰을 잊지 않는다. 한순간에 생사가 오가고, 누가 언제 괴물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갈등과 마찰은 당연히 일어난다. 어려움이 생기면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던 캐릭터들이 분열하는 건 흔한 일이다. 입주민들도 처음에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은혁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차츰 이기심을 내려놓고 괴물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하나가 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입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인간의 가능성과 본질을 이야기한다.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입주민을 무사히 피난시킨 이은혁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깨닫고 무너지는 아파트에 남아 홀로 죽어가는 장면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뒤로 갈수록 늘어지고 흔들리는 스토리
<스위트 홈>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 초반부에 아파트 내에서 ‘괴물들과 대결하는 인간’의 구도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던 이야기는 중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흔들리며 분기된다. 신파도 등장하고, 악당도 등장하며, 애달픈 러브라인도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감독의 로맨스 드라마 제작 경험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런 자질구레한 시도들이 드라마의 맥을 끊어 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원작에서 강조한 ‘인간의 욕망이 변화 후 괴물의 모습과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사실을 거의 무시하면서 진행된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결과적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다른 크리처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개연성
자세히 살펴 보면 이야기의 개연성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이 보인다.
1. 현수와 경비원이 만나는 장면에서 소개된 아파트 규모라면 입주민 수가 최소한 수백 명이어야 맞다. 헌데 입주민과 괴물 수를 다 합쳐도 30명 남짓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아파트가 대부분 빈집이라는 설정이라면 할 말 없다). 입주민과 괴물 수를 늘려서 전투 씬을 더 많이 찍었더라면 더욱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2. 괴물 VS 인간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서이경’이라는 원작에 없던 인물을 살리기 위해 ‘인간 VS 인간’으로 바뀐 것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뉴스에서 괴물 소식이 범람하던 때에도 전혀 이야기없던 군부대가 서이경의 도착을 기점으로 행동하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게다가 소방관으로 일하던 서이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특전사로 복귀하는 장면은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 둔 듯 작위적인 느낌이 크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이경의 특전사 복귀와 임신 소식은 시즌 2를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3. 악당들과 군대를 피해 주민들이 들어갔던 아파트 지하터널이 놀랍게도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최대 코미디라고 할 만하다.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 정도 길이의 터널을 만들었을까? 딱히 설득력 있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규모 자본이 드라마 퀄리티에 행사하는 영향력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스위트 홈>은 한국 드라마 사에서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자본의 투입이라는 점에서 괄목할만 하다. <스위트 홈>은 편당 30억 원, 그러니까 시즌 1에 무려 3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이 정도면 개봉용 블록버스터 영화 두 편을 넉넉히 찍을 수 있는 돈이다. 막대한 돈을 투입한 결과는 아깝지 않다. 드라마 퀄리티의 눈부신 비약을 창출해 냈기 때문이다. 특히 오프닝의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연출 장면이나 할리우드 못지 않은 몬스터 CG,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원한 음악은 이 작품을 퀄리티 드라마로 만든 수훈갑들이다. 이번 작품의 흥행 호조를 계기로 인기 웹툰의 드라마화나 영화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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