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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문화

무려 2시간 30분에 걸친, 꼰대의 지루한 윤리 교육, <원더우먼 1984>

by 마인드 오프너 202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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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카피도 이상하다. 영화 속 주인공이 거부할 수 있는 적이 있던가?? 

 

장르 : 액션, 모험
제작국 : 미국
상영시간 : 151분
개봉 : 2020.12.23.
감독 : 패티 젠킨스
주연 : 갤 가돗, 크리스 파인
등급 : 12세 관람가
누적관객 : 252,848명(12.26 기준)

 

Wonder할 줄 알았는데 Wander하군

 

DC코믹스도 레트로 열풍에 편승하고 싶었나 보다. 원더우먼 1984라니. 하지만 굳이 1984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붙인 레트로 시도가 딱히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시대적 배경과 소품을 80년대로 회귀했을 뿐 이야기는 레트로와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놀라운’ 여자의 활약을 보고자 하는 관객의 바람은 그다지 실현되지 못한다. ‘방황하는’ 이야기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저것 잔뜩 집어넣는다고 해서 좋은 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잡화점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원더우먼, 2017>을 연출한 동일인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는 전작보다 모든 면에서 퇴보하고 있다.

 

 


내 마음 나도 몰라식 연출

 

영화가 삐딱선을 탈 기미는 인트로 장면부터 엿볼 수 있다. 난데없는 데미스키라 체육대회를 소개하느라 피 같은 10분을 소요한다. 이 씬이 없어도 이야기 흐름에는 아무 영향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영화는 단절된 이야기들을 계속 보여준다. 쇼핑몰의 강도 체포, 맥스 로드의 이야기, 바바라의 개인 사정, 스티브의 환생과 로맨스 등 이야기들이 하나의 단편처럼 등장하는데 서로 보완하는 느낌이 아니라 맥을 끊는다. 덕분에 감독이 이야기 구성과 연출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애매해진다.

 

평범한 고고학사로 살아가는 원더우먼을 굳이 이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재주

 

결말에 가면 허탈해진다. 그동안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콘셉이 갑자기 눈앞으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다시 지나간 내용을 복기해 보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다이애너의 이모인 안티오페가 이야기한 ‘진실의 가치’가 영화의 주제이자 콘셉이었다. 쓸데없다고 여겼던 체육대회도 그 말 한 마디를 끄집어내기 위해 10분이나 소요했던 것이다. 천하의 악당인 맥스 로드가 빚어놓은 좌충우돌과 난장판은 ‘거짓된 욕망의 부당함과 진실의 가치’를 깨달은 당사자의 회개로 단번에 말끔하게 정리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좋은데 관객들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두 시간 반 동안 윤리 교육을 받으러 이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닌데 말이다.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한 힘을 얻었는데 갑자기 가족애의 소중함을 깨닫고 포기한다고?

 


자폭하는 빌런의 등장이라니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액션 영화의 흥행은 악당의 능력치와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좋은 수준은 주인공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다. 관객들은 열세에 몰린 주인공이 극적인 반전을 통해 악당을 통쾌하게 물리치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헌데 오랏줄을 받기까지는 열심히 싸워줘야 할 빌런이 갑자기 스스로 회개하고 뉘우치다니 이보다 황당한 결말이 있을까. 굳이 따져보면 맥스 로드의 캐스팅도 문제가 있다. 지금 한참 미드 <만달로리안>에서 선행을 통해 공덕을 쌓고 있는 착한 캐릭터 페드로 파스칼을 영입했으니 말이다. 보는 내내 그의 얼굴 위에 베스카 금속 가면을 씌우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이 작품을 보면 원더우먼이 많이 약해진 거 같다. 보약이라도 해 먹이든가 해야지...

 


자충수에 가까운 캐스팅 승락

 

캐스팅 중에 가장 황당한 캐릭터는 크리스 파인이다.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원더우먼의 소원으로 환생해서 짧은 사랑을 불태우다 세계 평화를 위해 사라지는 운명이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감안하면 명색만 주인공일 뿐 조연만도 못한 캐릭터 섭외에 왜 응했는지 의문이다. 원더우먼과의 짧은 하룻밤과 비행기 조종, 사막에서의 전투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장기적인 필모그래피 관점에서 보면 자충수나 다름없는 출연을 한 셈이라고 본다. 아니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출연료가 많았나?

 

크리스 파인은 왜 이 영화 출연을 승락했을까?? 그저 소모되기만 하는 캐릭터인데 말이다. 

 


쓸데없이 웅장한 한스 짐머의 음악

 

원더우먼이 Wonder하지 못하고 Wander하게 등장하는데도 그녀의 뒤에서 밀려오는 음악은 한없이 웅장하고 압도적이기만 하다. 크레딧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담당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늘 위를 거닐고 있는데, 화면 연출이 음악을 감당하지 못한다.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경우라고나 할까. 음악 자체만 놓고 보면 좋은데 화면과 같이 보면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미학의 장인 리들리 스콧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역시 종합예술인 영화는 개별 요소가 홀로 탁월해서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원더우먼이 허공에 뜨면 한스 짐머의 음악이 장엄하게 흘러나오는데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들린다.

 


Wander Woman, 다시 Wonder할 수 있을까

 

원더우먼은 DC히어로 중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개봉했던 <원더우먼>은 북미에서만 무려 4억 달러 이상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배트맨과 수퍼맨에 버금가는 히로인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원더우먼 1984>는 전작의 흥행 성적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개봉한 중국에서도 오프닝 흥행 실적이 전작에 한참이나 못 미치며 기껏해야 절반 정도에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수입과 배급을 담당하는 워너 브라더스 입장에서는 속이 탈 지경일 게다. 크레딧을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다. 전작에서 연출을 담당했던 패티 젠킨스 감독이 이번에는 흥행에 따른 수익을 노렸는지 감독, 각본, 제작, 원안까지 손을 뻗쳤다. 추측이지만 가진 재능보다 더 많은 걸 하려다 다 놓친 격이 아닌가 싶다. 차기작에서는 그냥 연출에만 충실하길.

 

아니. 원더우먼에게 왠 우뢰매 갑옷을 입혀 놓느냐고....그나마도 한 번 맞으면 바로 고물이 되는 허접한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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