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액션 |
성룡이 성룡했다
‘성룡은 성룡이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떠오른 문장이다. 성룡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 문장 속에는 긍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성룡이 주연하는 영화에 열광했던 관객들이 기대하는 스토리와 액션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냥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구태의연하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성룡의 팬이었던 필자조차 액션을 위해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권하긴 민망하다. 성룡표 영화는 세월의 흐름 속에 멈춰 있었던 반면 다른 액션 영화들은 무섭도록 변화했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현장요원 같은 CEO, 성룡
성룡은 이 영화에서 국제 민간경호업체 ‘뱅가드’의 CEO인 ‘탄환팅’으로 등장한다. 본인 주연의 영화에서 성룡이 현장요원이 아니라 행정직이나 관리직으로 나오는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스피드와 체력, 액션을 요구하는 역할은 대부분 후배들에게 넘겼지만 왕년의 명성과 습관 때문인지 완전히 발을 빼지는 않았다. 성룡은 기꺼이 후배들과 액션을 함께하며 고생을 자처한다. 그가 1954년생이니 68살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손자뻘의 젊은이들과 합을 맞춘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높지 않을 것이다. 열정과 노력이 흥행과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젠 스스로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능력을 초과하는 일인다역의 연출
<뱅가드>가 생각보다 모든 면에서 좋지 않은 이유는 성룡의 집착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감독의 문제도 크다. 당계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기획, 감독, 각본, 제작을 병행했다. 실상 이 영화의 성패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주연배우인 성룡이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꺾어야 한다. 그래야 영화를 살릴 수 있다. 그런데 감독이 주연배우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면? 부족한 능력으로 영화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이끌려고 한다면? 결과는 흥행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계례 감독도 위험하다 싶었는지 영화 곳곳에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요소들을 심어 놓았다. 폭포 액션 씬, 중동 도시의 현란한 시가전, 뱅가드 요원이 타는 드론, 무인 미사일 발사장치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나리오, 연출 등의 메인 요소가 제대로 정립되었을 때 빛나는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이것들로 판도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진품보다 화려해 보이는 짝퉁 느낌
광고계에서 금언처럼 전해오는 말이 있다. ‘소비자에게 한 가지만 기억시킬 것’.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영화의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관객의 뇌리 속에 남겨야 한다. 마이클 만 감독의 ‘실제 총격전, 리들리 스콧트 감독의 ‘최고의 미학’, 마이클 베이 감독의 ‘리얼 액션’이라는 수식어를 보라. 당계례 감독은 <뱅가드>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었을까? 관객 입장에서 평하자면 <뱅가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엉망인 짝퉁’처럼 보였다. 특히 총격전 연출은 최악이었다. M4나 AK 소총을 사격하는 자세가 엉망이다. 무슨 총이 연발로 놓고 쏘는데도 반동 하나 없다. BB탄 쏘는 건가. 이런 엉터리 총격전 연출은 처음이다. 최소한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는 봤어야지.
성룡표 영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느 분야에 있든지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은 정상에서 잘 내려오는 것이다. 정상에서 누린 인기에 취해 떠날 때를 놓치면 점점 추해질 뿐이다. 성룡은 제임스 딘과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이 왜 영원한 우상으로 남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은 전성기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의 뇌리에 영원한 스타로 남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성룡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관객들, 특히 그의 팬들은 아직도 그의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영원히 홍콩 액션 영화의 전설로 남고 싶다면 지금 고별사를 전해야 한다. 본인의 전설을 이어가고 싶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후계자를 양성해도 되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리메이크해도 좋다. 이런 설계 없이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의 모습만 보인다면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팬들은 성룡의 영화가 전성기 시절의 추억마저 망가뜨리며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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