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국가: 미국
상영시간: 92분
개봉 : 2023.05.12.(북미)
감독 : 로버트 로드리게즈
주연 : 벤 에플렉
등급 : 15세 이상
로버트 로드리게스 버전 <메멘토>?
<메멘토>는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어디로 갈지,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두 번 정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억이 흐려진 지금은 다시 봐도 이해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힙노틱>은 소재는 다르지만 <메멘토>를 닮았다. <메멘토>가 단기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것에 비해 <힙노틱>은 최면술을 소재로 한다. 지금은 존재감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역시 ‘로버트 로드리게스’라는 탄성이 나올 법하다. 다만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인 최면술을 용납할 수 없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다.
딸이 납치된 형사의 추적기
강력계 형사 대니 루크(벤 에플렉)는 심리 상담 중이다. 놀이터에서 그의 딸 미니를 누군가에게 납치당해서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루크는 딸을 찾고자 하지만 이따금 연원을 알 수 없는 기억의 오버랩으로 정신이 혼란해진다. 은행이 털릴 것이라는 신고를 받은 루크는 강력한 최면술로 사람들을 조종하며 은행을 터는 델레인(윌리엄 피츠너)을 추적한다. 델레인보다 먼저 비밀금고에 들어간 루크는 레프 델레인이라고 쓰여진 폴라로이드 사진을 발견한다. (이 폴라로이드 사진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델레인은 루크와 대치 중 오갈 데 없는 빌딩 꼭대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루크는 강도 사건을 제보한 심령술사이자 최면술사인 다이아나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델레인의 추격을 피해 달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눈에 보이는 사실을 믿지 말라고 했듯이 주인공 루크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으면 안 된다. 다이아나와 함께 델레인과의 추격전을 거듭하면서 루크는 그동안 경험한 과정이 모두 디비전의 시나리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디비전이 루크의 딸 미니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고자 같은 루틴을 되풀이하면서 루크의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것. 하지만 디비전이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루크가 스스로 지운 기억의 조각을 회복하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스크린 뒤의 진짜 계획이 드러난다. 미니를 납치한 장본인은 바로 아버지 루크였으며 납치한 목적은 미니를 군사목적으로 키우려는 디비전의 계획에 반발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의 오류
루크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미니를 맡긴다. 디비전의 능력을 아는 루크는 미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말소한다.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단서는 은행 비밀금고 안의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루크는 디비전의 시나리오를 거듭하던 중 폴라로이드 사진 밑에 쓰인 명칭의 의미를 깨닫고 그곳으로 간다. 디비전의 은행 시나리오는 요란했지만 사진의 의미는 루크만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정 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루크 역시 의도한 딸과 아내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확연히 떨어진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최면술
최면술을 소재로 현실이 환상이 되고, 반전이 거듭되는 건 매력적이다. 발상의 기발함은 최근 영화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최면술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상대방을 눈짓 하나로 움직인다는 건 무협지의 환술에서나 가능한 설정 아닌가. 델레인이 보여주는 엄청난 최면술이면 굳이 루크의 딸을 데려갈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군사적 목적은 달성 가능하기 때문이다.(쿠키에서 델레인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최고의 최면술사라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자가당착적인 설정과 근거를 대지 못하는 먼치킨 능력이 기발한 설정을 압도하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굳이 결말을 그렇게 해야 했을까
루크가 본 진실이 사실은 환상이며 그가 딸을 납치했다는 설정이 베일을 벗고 난 후에는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해답은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이전까지의 전개를 모두 뒤집는 반전을 목표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답정너’의 느낌이 강할 뿐이다. 이전에 던져 놓은 암호명 ‘도미노’의 의미도 사라지고, 세워 놓은 도미노의 의미도 모호하다. 디비전을 떠나서 방치되어 있던 미니가 최강의 최면술을 발휘하는 것 역시 그전까지의 설정에서 어긋한다. 미니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다면서?
창대했던 시작, 아쉬운 마무리
‘딸의 실종을 추적하려는 형사’라는 미스터리적 시작도 좋고, 최면술이라는 보기 드문 능력을 소재로 삼은 점도 훌륭하다. 하지만 최면술에 먼치킨 능력을 부여한 건 감독의 결정적인 실수다. 환상 속에서 헤매던 루크가 갑작스럽게 최면에서 풀려나 사실을 직시하게 되는 계기도 모호하다. 시퀀스마다 방점을 착실하게 찍고 나아가야 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의문과 궁금증만 남기는 전개를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내세울 장점이 적지 않지만 의문을 자아내는 단점이 너무 인상적이고 강렬하기에 모두 묻혀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최면술 영화를 이렇게 만들기 쉬웠다면 이미 이전에 누군가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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