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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웹소설 중에서 야구 소설을 읽었다. 요새 웹소설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그대로 따른 소설이었다. 방출 위기의 노장 투수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점수 획득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아서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시작부터 이야기 전개와 결말이 예상되는 뻔한 소설이었다.
우연히 기연을 만나 인생역전을 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80년대 말 무협소설부터 있었던 설정이다. 근본적인 틀에서 40년 이상 전혀 발전이 없다는 의미다. 기연을 만나 인생역전을 한다는 설정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기연을 만나도 그 이후에 풀어가는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기연을 얻은 주인공은 삽시간에 ‘먼치킨’이 된다. 예상하는 대로 게임이 전개되고, 승부에서 쉽게 승리한다. 역경을 힘들게 이겨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긴장감도 없고, 의외의 변수가 나타나는 데에서 오는 재미도 없다. 그런데 상당수 웹소설이 이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행본을 내고 많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스포츠 소설을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대답해주는 작품이 바로 <마구>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대중들의 사랑을 수십 년 동안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같은 소재도 쓰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천지차이가 난다.
<마구>는 특이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읽은 스포츠 소설 중 가장 슬픈 결말을 갖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인데도 그렇다. 미스터리와 드라마, 스포츠를 결합해서 이토록 슬픈 소설을 쓸 수 있는 게이고의 능력이 부러울 뿐이다. 그냥저냥 뻔한 결말뿐인 웹소설에 질렸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을 일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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