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를 탔던 영화 예상
처음에 이 영화 포스터를 본 건 대형몰의 벽에서였다. <파묘>라는 제목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포스터만 봐도 오컬트 영화라는 게 금방 드러났다. 이우혁의 <퇴마록>을 영화로 옮긴 것부터 몇 편의 국내 오컬트 영화를 본 입장에서는 딱히 기대되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흥행이 될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천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것인지 궁금했다. 감독이 오컬트 무비 한우물을 팠으니 그래도 나았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끌어모은 이유를 모르겠다. 중반까지 서사를 착실하게 빌드업하지만 한 차례 위기가 지나간 중반 이후에는 그동안 모아놓은 서사를 한방에 허물고 엄한 소리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영화 흥행은 난해하다.
장르 : 미스터리, 공포
상영시간 : 134분
개봉 : 2024.02.22.
감독 : 장재현
주연 : 최민식, 김고은
등급 : 15세 이상
첫 번째 빌런, 친일파 매국노 조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자산가의 의뢰를 받고 미국 LA행 비행기에 오른다. 고객을 만나보니 자자손손 기이한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털어놓는다. 장손의 조부 묫자리가 문제임을 파악한 화림은 돈을 들여 이장할 것을 권하고, 귀국해서 풍수사인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을 찾아간다. 때마침 딸의 결혼 비용이 필요했던 상덕은 얼씨구나 합류하지만 문제의 묫자리를 보고서는 일을 거절한다. 풍수지리에서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최악의 장소였던 것. 화림의 설득으로 파묘가 시작되고 오랫동안 갇혀 있던 조부의 악령이 관을 빠져나와 살인을 저지른다.
두 번째 빌런, 전사한 다이묘
일을 의뢰했던 고객과 부친이 조부의 악령에 의해 죽음을 당한 후 천신만고 끝에 악령을 제거했나 싶었지만 문제는 그치지 않는다. 그 무덤의 아래에는 또 다른 관이 묻혀 있었고(첩장), 그 관 안에는 일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본 귀신이 숨어 있었다. 화림은 동료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고 상덕은 원래의 묫자리에 가서 일제가 한국의 지기를 끊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아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에 거슬리는 인간은 무조건 죽이고 마는 일본귀신,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두 개의 이야기를 합친 느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쓴 후 나중에 하나로 짜깁기한 모양새다. <파묘>의 포스터로만 본다면 초중반까지의 흐름과 첫 번째 악령으로 끝이 났다면 최소한 톤앤무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는 받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러닝타임과 흥행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지라 새로운 악령을 덧붙였다는 의미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사건을 합치고 싶었다면 초반 빌드업 과정에서 복선을 교묘하게 감추어 놓거나 첫 번째 사건을 마무리하기 전에 연관성을 심어 놨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맥락에도 없는 일본 귀신(그것도 시대에 맞지 않는 다이묘)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꼬여 버렸다.
일제와 쇠말뚝에 음양사, 다이묘까지 총출동
전반적으로 친일파와 일제 시대의 잔재를 깔고 서술하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일본의 종교적 요소를 많이 등장시킨다. 하지만 이 요소들이 이야기에 매끈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일단 개인 묫자리가 백두대간의 지기를 품고 있는 곳이라는 설정이 어긋난다. 여기에 음양사와 다이묘는 시대착오적이다. 쇠말뚝을 봉인하기 위해서 일개 다이묘의 영혼을 묶어둔다는 게 과연 얼마나 효험이 있을까? 종교적인 영험이 있는 신물이나 일정한 모양을 띈 진(陣)을 형성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살상력을 가진 일본 귀신이 필요했기에 답을 미리 정해놓고 설정을 맞춰놓은 것으로 보인다.
소재의 폭을 더 넓혔어야 좋았을 듯
처음 포스터를 보았을 때 묘를 파헤쳐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파묘’라는 제목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점이 있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이야기 소재를 스스로 제한하는 한계를 갖는다는 단점도 명확하다. 모든 이야기를 ‘파묘’라는 소재에 국한시켜 풀어가다 보니 흐름이 자유롭지 못하고 결국 첩장이라는 아이디어로 두 명의 귀신을 출현시키는 무리수를 두어야 했다. 파묘라고 하고 결국은 엑소시즘 영화로 끝난 결말도 이러한 결정에 아쉬움을 주는 부분이다.
유해진과 이도현의 분량 아쉬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입장에서는 유해진과 이도현의 연기가 아쉽다. 그들의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극중의 캐릭터로서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분량이 미처 확보되지 못했다는의미다. 언제부터인가 유해진은 영화 속 이야기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감초 역할로 고정된 느낌인데 연기력이나 경력을 감안하면 더 많은 활용을 해 주어야 하는 배우다. 이도현은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는데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화림의 꼬봉으로 지시가 없으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배역 상의 한계로 가진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다.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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