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소설 기반의 만화
애니 <시구루이>는 야마구치 타카유키의 만화(15권 완결)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만화는 난조 노리오의 소설 <스루가성 어전시합> 중 첫번째 에피소드인 <무명역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30여 페이지에 불과한 단편소설을 단행본 15권으로 각색한 만화를 다시 12부의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것이다.
시간적인 배경은 검 하나에 운명을 맡기고 사무라이들이 종횡하던 에도 막부 시대이다. 맹인이 된 이라코 세이겐과 스승의 복수에 나선 외팔이 검사 후지키 겐노스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겁다. 진검 대결의 결과를 가감 없이 묘사하는 하드고어가 특징으로 심장이 약하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보지 않을 것을 권한다.(야마구치 타카유키의 전작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게 이 정도)
시작부터 세다
애니메이션은 시작부터 세게 나간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도쿠가와 타다나가가 쇼군으로부터 할복을 명령받고 목이 잘리는 장면으로 문을 여는 것이다. 타다나가의 목이 떨어지고 피가 흐르는 가운데 그가 죽어야 했던 배경에 대한 설명이 흐른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도쿠가와 타다나가는 쇼군의 친동생이지만 어전시합을 진검대결로 개최하여 22명의 출전자 중 16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만든 대가를 치러야 했다. 타다나가는 평소에도 가학적인 면모를 보이며 음란하고 방탕한 성정을 휘두른 결과 사무라이들의 외면을 받고 일종의 탄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용호상박 두 주인공
실질적인 주인공은 코간류의 면허전수자이자 사범인 후지키 켄노스케와 이라코 세이겐이다. 어린 시절부터 코간의 문하에서 자란 켄노스케와 달리 이라코 세이겐은 비기를 배우기 위해 코간류에 들어온 인물이다. 세이겐은 첫 번째 대결에서 켄노스케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자존심을 박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이겐은 승승장구하며 코간류의 정식 후계자가 되기 직전까지 가지만 코간의 첩을 건드림으로써 추락한다. 두 눈을 잃고 쫓겨난 세이겐은 당시 도쿠가와 타다나가의 주치의이던 검교 밑으로 들어가 새로운 검법을 창조한 후 복수에 나선다.
외팔이와 맹인의 검술 대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코간의 지도력에 의심을 품은 사문 내부의 배신자에게 정보를 얻어 세이겐은 문파의 유력한 제자들을 처치한다. 코간과의 정면대결에서는 코간류 최강 비기인 나가레보시를 깨뜨리며 코간의 얼굴을 날려버린다. 사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스승마저 참살당한 코간류는 봉문을 선언하고 켄노스케와 코간의 딸 미애는 참담하게 살아간다. 절치부심하던 이들에게 타다나가가 주최한 어전시합 참여가 허락되고 왼쪽 팔을 잃은 켄노스케와 맹인이 된 세이겐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사문의 복수를 이루려는 켄노스케와 자신의 운명을 망쳐버린 사문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세이겐,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무겁고도 진지하며 잔혹한 작품
묻고 더블로 가! 이 작품의 하드고어한 표현의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원작자인 난조 노리오가 “인간의 감정이 극한으로 달릴 때 잔혹은 태어난다”고 말했던 인물인데다 만화가인 야마구치 타카유키 또한 전작부터 잔혹한 묘사로 이름 높은 인물이었으니 하드고어는 피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평범한 검술 만화, 예를 들어 <배가본드>나 <바람의 검심>과 같은 작품들은 검술 과정의 액션에 주목할 뿐 검에 베인 결과는 과감히 생략해 버리는 데 비해 <시구루이>는 집요하게 검에 잘린 인물의 부상 표현에 집착한다. 여기에 더해 새디스트적인 에로 요소 역시 노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로테스크한 작품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막부 시대 사무라이의 실상
그런데 그로테스크한 표현의 원인을 작가들의 성향으로 돌리는 건 억울할 수도 있다. 막부 시대에 지배계급으로 군림했던 사무라이들의 가학적인 면모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개의 사무라이 만화들이 낭만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막부 시대를 이상적으로 묘사하지만 실제 막부 시대는 소수의 새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들이 쌓아올린 피라미드 구조나 다름없었다. 영주의 말 한 마디면 의미 없는 검술 시합에 실력 있고 명망 있는 사무라이들이 참혹하게 죽어야 했다. 길 가던 사무라이가 배알이라도 뒤틀리면, 일반 백성들은 죄가 없어도 목이 달아나기 일쑤였다. 법 위에 있는 무력 앞에 항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시구루이>의 그로테스크와 하드고어는 작가의 의도된 표현이 아니라 현대인 관점에서 미화한 사무라이 이미지를 걷어내고 당시 윤리관과 규율에 의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의 발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시구루이>는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다.
압도적!
좋은데?
시도는 좋다
그냥저냥
시간이아까워
장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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