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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경영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만든 모기 13마리의 교훈

by 마인드 오프너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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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피를 빨지만 방향성이 잘못되어 있기에 모기가 하는 노력의 끝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덧 살 날보다 산 날이 많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중년 이후에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쩌면 그 과정은 지식만 추구하던 생활에서 지혜를 추구하는 변화의 조짐인지 모르겠다. 이런 경향은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심화된다. 내가 걸어온 여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현재가 불만스러운지 살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이런 생각은 살아가는 데 유익하다.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이나 경험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지인이나 친인척의 장례식장에 가보는 게 좋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장례식장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을 불길하게 여기고 삼가는 경향이 있다. 난 반대다. 오히려 젊은이들을 장례식장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오며,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해야 더 보람 있고 가치 지향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YOLO'와 ’Carpe Diem‘

 

젊은이들에게 ‘꼰대’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한 모양이다. 나이를 먹으면 젊은이들과 똑같이 생각하기 어렵다. 꼰대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꼰대들의 생각이 다 쓸데없고, 어리석지는 않다. ‘경험’이란 지식과 지혜의 산물이다.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이 쉽게 비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세대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고, 동의하고 싶지 않은 개념이 있다. ‘YOLO'에 관한 생각이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기회가 왔을 때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때에는 비슷한 의미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 표현이 있었다.

‘한 번 뿐인 인생이고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건 감정적인 생각이다. 현실만 생각하고 미래는 간데 없다. 우리 인생은 ‘현실’이라는 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긴 선에 가깝다. 선을 점으로 보고 현실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그 다음에 찾아올 삶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알려주는 ‘미리 준비하는 삶’이 세대를 뛰어넘는 진리로 대우받는 이유다. 현재를 즐기며 산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사례를 찾아보라. 현실을 즐기며 살고 싶은 생각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YOLO’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게 된 연유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잘못된 현실을 탓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봤자 피해는 본인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비난과 불평은 현실을 극복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현재를 즐기고 사나, 힘들게 고생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사나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오십보백보인 경우가 많다. 결과만 크게 차이가 날 뿐이다. 과정을 힘겹게 헤쳐 나온 사람들은 할 이야기가 많다. 하나하나의 일화가 자신에게 주는 훈장이 된다. 즐기는 삶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때로는 꼰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젊음은 인간이 가진 자원 중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소중한 자원이다. 젊은 시절에 본인이 원하는 삶을 위해 목숨 걸고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같은 기회는 오지 않는다. 왜냐고?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으면 욕망도, 체력도, 머리도 예전 같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진 자원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가 유리한 건 당연하다. 본인의 과거를 돌이켜보라. 어떤 것들이 기억나는가? 즐거움은 그때뿐이지만 힘들게 고난을 극복한 기억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모기도 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어제 저녁 잠을 통 잘 수가 없었다. 때아닌 모기의 극성 때문이었다. 새벽 2시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깼다. 양 팔이 몹시 가려웠다. 정신없이 가려운 부위를 긁고 있는데 귓가에 모기의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일어나 불을 켜 보니 이런 세상에나. 새카만 모기 다섯 마리가 벽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큰 놈은 발을 부비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여서 소름이 끼쳤다. 괜히 가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놈들 중 한 마리 혹은 전부가 내 피부에 빨대를 꽂았던 게 분명했다. 녀석들을 모두 잡느라 30분이 걸렸다. 벽에 압사한 두 마리의 흔적에 피가 흥건하다. 찜찜한 심정으로 다시 잠을 청했지만 결국 잠을 잘 수 없었다. 방안에서만 13마리, 거실에서 2마리를 잡느라 30분마다 일어나야 했다.

모기와의 혈전은 잠을 포기하고 사냥에 나선 나의 승리로 끝났다. 승자로서의 쾌감은 잠시뿐 씁쓸했다. 모기와 나의 피가 섞인 채 진홍색으로 변한 벽을 보며 한참이나 생각했다.

 

‘살기 위해서 모기조차 목숨을 건 전쟁에 임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인생을 살아왔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결론은 ‘아니다’였다.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황당하리만치 게을렀고, 어리석었다. 현재만 생각하고 앞날을 보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성공한 꼰대’들의 관점에서 보면 턱없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행동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실패로부터 교훈도 얻지 못했다. 이만큼 했으니까 됐다는 ‘노력주의’에 빠진 채 결과로 말 하는 ‘성과주의’를 외면했다. 더 열심히, 현명하게 일해야 했는데 포기하거나, 환경 또는 운명을 탓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모기처럼!

 

겨우 모기 몇 마리 잡은 사건으로 침소봉대도 엄청나다 여길 수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교훈을 얻어 인생을 바꾼다. 하찮은 곤충이지만 생사지간의 상황에서 피를 빨려는 모기의 노력에서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전력을 다한 모기의 노력이 언젠가는 비극적으로 끝나는 부분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보다 현명하게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종국에는 불행만 겪을 뿐이다.

인간은 욕망에 충실하려는 본능뿐만 아니라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도 갖고 있다. 현재를 즐기려는 ‘YOLO'의 욕구는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다. 노력해봤자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불평해봤자 돌아오는 건 현재를 즐기기 위해 탕진한 카드 결제를 위해 썰물처럼 빠져나간 통장 잔고와 소비의 파편뿐이다. 감정은 충동적이고 일시적이나, 이성은 가치 지향적이고, 오래 간다. 감정에 휩쓸려 내일을 잊는 순간 인간도 원치 않는 운명에 의해 압사할 수 있다. 모기에게 이것 하나만 확실히 배워라. ‘무엇을 하든 목숨을 걸어라.’ 즐기는 건 원하는 목표를 이룬 후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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