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구병모
- 출판
- 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8.04.16
한 남자가 지하철 안에서 앞에 앉아 있는 임산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머리를 건드리며 욕설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사태를 외면하고 상황은 더 악화가 됩니다. 지하철이 멈추고 행패를 부리던 남자가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쓰러집니다. 지하철을 타려던 청년과 부딪힌 충격일까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젊은 남자와 부딪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칸에 탄 채 그를 노리던 60대 여성이 남자의 등을 찔러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생전 처음 본 남자를 죽인 이유는 청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프로 살인청부업자인 '조각(爪角)'입니다.
제목인 ‘파과’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인 파과(破果)는 '흠집이 난 과실'을 의미합니다. 흠집이 난 과실은 나이가 들어 킬러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주인공, 조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과를 破瓜로 쓰면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이 과(瓜)를 파자하면 '八(여덟 팔)' 자가 두 개 나오고 이는 여자 나이 16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조각이 류에게 스카우트되어 킬러가 된 나이가 15세였다는 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破瓜는 처녀가 성 경험을 하고 여인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류의 가게에서 일하던 조각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미군을 살해하면서(심리적 파과) 류의 인정을 받고 킬러로 교육받게 됩니다. 순진한 시골처녀에서 냉혹한 킬러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파과의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각의 인생은 기구합니다. 5남 1녀의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12살에 친척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중에 뜻하지 않은 절도를 했다가 사촌오빠를 다치게 하고 쫓겨납니다.
길거리를 헤매던 그녀는 류의 가게에서 일하다가 미군을 살해한 것을 계기로 류와 함께 청부살인업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류의 아내 조와 자식이 살해되면서 류는 ‘지킬 것을 만들지 말자’며 연인으로 맺어지길 갈망하는 조각과 거리를 둡니다. 류는 사무실에 설치된 폭탄으로부터 조각을 보호하려다 사망합니다.
조각은 킬러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던 중에 자신의 부상을 치료해 준 강박사의 딸을 같은 에이전시 소속 청부업자인 투우가 납치하자 홀로 구하러 갑니다. 투우가 고용한 용병들을 처리하고 투우와 사투를 벌인 끝에 조각은 살아남습니다. 조각은 그제서야 투우가 오래 전 청부살해한 남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지킬 것은 만들지 말자’던 류와의 약속을 깨뜨린 조각은 청부업자 업계를 떠나 사라집니다.
<파과>의 가장 큰 차별성은 60대의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것, 문학적 완성도와 인상적인 문장력, 킬러 소설인데 액션을 내려놓고 주인공과 조연들의 내면 변화에 집중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장년 독자들이 읽으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작품입니다.
4월 30일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습니다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관객 리뷰는 호평이 많지만 원작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가 거의 대부분 빠지고 액션 위주의 흔한 킬러물로 다운그레이드한 느낌입니다. 엄청난 호평 리뷰에도 불구하고 손익 분기점 120만 명에 못미치는 55만 명으로 막을 내리고 만 이유라고 봅니다.
이색적이면서도 문학적 완성도 높은 킬러 소설을 원한다면 소설 <파과>는 매우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구병모 작가의 <파과>에 대한 평점은 8.7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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