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협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지방에서 올라와 무협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예비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가방 안에는 대학생 노트 여섯 권 분량의 습작이 들어 있었고 데뷔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의 데뷔는 수 개월 뒤로 미루어졌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벽 때문이었습니다.
교정과 수정의 혹독한 시절을 거친 후 청년은 프로 무협 작가로 첫 작품 <철검무정>을 선보이며 데뷔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협 시장에서 장경이라는 작가의 존재감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선 굵은 구성과 비장미 물씬 풍기는 분위기, 무거우면서도 장중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장경의 작품들은 남성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8년 장경의 작품 <암왕>은 소재부터 독특합니다. 주인공 명강량은 배교(마교)의 호교신장으로서 '마교'를 말살하고자 추적해오는 구파일방과 유향경천문에 맞서 성녀와 교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정파 연합군을 대적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결국 명강량은 유향경천문주 단원홍에게 중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성녀인 약약은 명강량을 치료해주고 사랑을 나눈 후 단원홍 부하의 손에 이끌려 사문으로 돌아갑니다. 10개월 뒤 약약은 딸을 낳던 중에 사망합니다. 부상 이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명강량은 성녀가 화형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분노하고 천년 전 배교 최강자였던 타할륜의 환상을 만나 암왕으로 부활합니다.
암왕이 된 명강량은 정파 연합을 박살내고 단원홍마저 꺾습니다. 단원홍은 죽어가면서 2대 성녀인 예령에 대한 단서를 남깁니다. 예령이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 명강량은 딸을 보호하고 전쟁을 끝내고자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명강량이 딸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성녀 약약이 환상 속에서 나타나 명강량을 맞이합니다. 무협 소설에서 이처럼 남녀 간의 사랑을 깊이 있게, 인상적으로 끝낸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읽고 나면 명강량과 약약의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지고 호교신장이자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다 숨을 거둔 명강량의 고단한 삶이 떠오릅니다. 무협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암왕(暗王)]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북마존 평점은 8.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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